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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블로고스피어]'바누아투' 블로거 이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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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3-18 10:45:55 수정 : 2008-03-18 10: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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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작은 섬나라서 띄운 ‘행복일기’
◇가난하지만 가장 행복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바누아투의 삶과 사람들을 블로그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블루팡고’ 이협씨와 그의 가족의 행복한 모습(왼쪽)과 ‘최빈국 바누아투에서 행복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블루팡고’ 블로그 화면.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와 뉴질랜드 사이 면적 1만2190㎢, 인구 20만4000여명의 섬나라 바누아투 공화국(Republic of Vanuatu). 

직업이 없는 사람이 93%에 달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이지만, 2006년 영국 신경제재단(NEF) 조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에 꼽혔다. 이곳의 생활과 삶을 블로그(blog.daum.net/vanuatu, bluepango.net)에 올려 한국에 소개하고 있는 ‘블루팡고’ 이협씨. 그는 2002년 9월 바누아투로 이민 간 한국인 블로거다.

이씨는 하루 평균 1000명 이상의 네티즌이 찾는 인기 블로거이며, 특히 올 초 ‘인간극장’ 5부작을 통해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지기도 했다. 2주일간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의 속내를 들어다봤다.

―올해 KBS의 신년특집 ‘인간극장―행복의 섬 바누아투(5부작)’에 방송됐는데.

“지난해 ‘인간극장’ 제작팀이 바누아투 교민 정보를 문의해 왔어요. 교민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가족 인터뷰도 했어요. 12월에 신년특집 출연자로 결정됐어요. 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며 바누아투 소식을 전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이씨의 블로그를 살펴보니 바누아투에서의 생활과 바누아투 사람들이 잘 드러나 있었다. 문장력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솔직한 그의 글과 아름다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바누아투에 가고 싶었다.

―블로그를 보니 방송 후 반응이 대단하더라.

“사람들은 연출이 많을 것이라 짐작하겠지만, 연출은 거의 없었어요. 20여일간 PD와 촬영감독이 밤낮으로 따라다녔죠. 연출은 두 가지 뿐이에요. 저희 부부가 잘 싸우지 않았죠. 카메라가 돌아가니까 싸울 수가 있어야죠. ”

이씨는 방송 촬영 중에 오히려 인간극장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블로거뉴스’로 올려 네티즌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런데 ‘블루팡고’는 무슨 뜻인가요.

“팡고는 제가 사는 동네 이름이고, 집 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비취빛과 코발트빛 남태평양이 펼쳐져 있어요. 그래서 블루팡고라고 한 거예요.”

이씨는 1963년 10월21일 경기 포천에서 5녀2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다섯 누나 사이에서 바누아투처럼 깨끗한 환경과 순박한 사람들 속에서 건강하게 자랐다.

―유도대학 태권도학과에 입학했는데, 태권도에 관심 많았나요.

“누나들 틈에 살아서 아주 내성적이었어요. 성격을 고쳐 보고 싶어 고등학교 때 태권도를 배웠죠. 경력은 없고요. 그런데 대입 시험에 떨어진 뒤 선배와 이야기하다 유도대학 얘기가 나와 유도대학이 갖고 있는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얘기를 듣고 매료돼 진학하게 됐죠.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씨는 1984년 대학 3학년을 중퇴하고 만다.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게 되고 복학을 준비할 즈음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복학하지 않았다.

―1987년 청산호반캠프에 입사해 무얼 했나요.

“경기 연천 한탄강 상류에 청산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청소년수련원 청산호반캠프를 경영하고 있었어요. 제대 후 아버지를 도우며 총무부에 입사한 거죠.”

1989년 아버지가 작고한 후 그는 충남 부여에 있는 유스호스텔 교육부에서 일하게 됐다. 청소년수련원 일을 하면서 청소년 지도가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육부 소속이었지만 계약직이었어요. 급여 역시 형편없었죠.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이 시작되고 새벽 1시에야 끝났어요. 간혹 당직을 서는 날이면 24시간 일할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청소년을 지도하는 게 너무 좋아 힘들거나 돈이 작은 것이 불만인 적은 없었어요. 일이 아니라 청소년 교육자라는 신념에서 했죠.”

이씨의 헌신적인 업무 태도에 2박3일의 짧은 교육 후에도 많은 학생들이 감사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 1995년에는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경성여고와 미림여고 교감 선생과 학생부장 등은 나의 교육이 맘에 들어 8년간이나 우리 교육장을 찾았죠. 최근 인간극장 방영 후에는 미림여고 학생들로부터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1995년 일본에 가서 공부하기 위해 일본어학원을 다니다 강원 동해에서 태어난 아내 정혜지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두 아이를 낳았다.
◇바누아투바다속 모습.

―이민은 왜 결심했나요.

“학생에게는 최고의 청소년지도사였지만 집에선 0점짜리 가장이었죠. 아내는 가족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이민을 가자고 하더라고요. 결국 선택해야만 했고, 저는 가족을 택했지요.”

이민을 결심할 즈음 어머니가 암으로 입원해 고민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가족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어디든 떠나라, 그것이 효도’라고 해 동생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2002년 9월 바누아투로 이민 갔다.

―왜 하필 바누아투인가요.

“당시에는 선진국으로 이민 갈 형편이 못되고 어쩔 수 없이 제3국을 찾게 됐고 바누아투가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를 쓰고 치안도 좋아 아이 교육 면에서도 좋다고 판단해 결정했어요.”

―이민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나요.

“청소년지도사 생활 17여년을 하면서 집에 생활비 가져다 준 건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아내가 부업으로 생활을 꾸려야 했으니 좀 힘들었지요.”

바누아투는 ‘우리의 토지’라는 뜻으로 영국과 프랑스 통치령인 뉴헤브리디스 제도가 1980년 독립해 세워진 나라다. 13개 섬이 Y자 모양으로 연결돼 있다.

바누아투로 온 첫날, 집을 구하지 못해 교민의 조그마한 방 한구석에서 잤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비좁고 불편한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이 어울려 함께 잔 날이었어요. 그날 밤 잊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행복해 하는 아내의 모습 역시 잊혀지지 않습니다.”

물론 바누아투의 생활이 항상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바누아투에 땅을 사 건물을 지으려다가 건축업자가 공사 도중 잠적하는 바람에 3000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그는 2007년부터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모텔을 완공해 시설이 아주 깨끗해요. 또 모텔이 남태평양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경관이 아주 휼륭하죠. 가끔 돌고래 떼가 모텔 앞 바닷가를 지나가며 인사하죠. 가격도 저렴하고 친절하게 해주고 있어 외국인 단골 손님도 꽤 되지요.”

―이민으로 바라던 것을 이제는 얻었나요.

“가정의 행복을 찾기 위하여 이민 왔는데 얻고도 남았습니다.”

김용출·김태훈·김창덕·김보은 기자

kimgija@segye.com





프로필

●1963년 10월 경기 포천 출생

●1982년 서울 경성고 졸업

●1984년 대한유도대학 태권도학교 3학년 중퇴

●1987년 청산호반캠프 입사

●부여 유스호스텔, 한국청소년 교육원 등 근무

●2002년 9월 바누아투 이민

●1995년 문체부장관상 수상(청소년 지도사, 1995년), 블로거기자상 우수상 수상(2007년)

●가족으로는 아내와 1남1녀



이협이 권하는 좋은 블로거가 되기 위한 팁

1. 블로깅 자체를 즐겨야 한다.

2.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

3. 자기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4. 자기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눈여겨보며 블로깅 거리를 찾아라.

5. 욕심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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