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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박물관] “태초에 악기가 있었다”, 헤이리 세계민속악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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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4-03 14:22:13 수정 : 2014-01-08 00: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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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족 원주민의 모습을 한 목각인형 한 쌍이 눈을 부릅뜬 채 위협적인 표정으로 박물관 전시실을 지키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 토인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이 목각은 아시아인을 표현한 것입니다. 인형이요? 이것은 북이랍니다. 자, 이 소리를 들어보세요.”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이 있다. 둥둥. 딩딩. 차륵. 전 세계 115개국에서 온 악기 2000여점은 수십, 수백 년 전의 소리를 머금은 채 이영진 헤이리 세계민속악기박물관장의 손과 입을 통해 유구한 역사와 변함없는 생명력을 과시했다. 100개 지역 이상의 유물을 갖춘 박물관은 국내에서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이 유일하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파주 헤이리관, 부산관, 강원도 영월관 등 전국에서 3개관이 운영 중이다. 이중 가장 먼저 설립된 헤이리의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2003년 개관 이후 10년째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다.

박물관 입구인 1층부터 시작되는 전시는 지하 1층의 메인 전시관으로 이어진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동아시아, 인도, 서남아시아,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남태평양 등 문화권별로 악기를 분류해 각 나라의 전통 인형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세계 여러 민족과 부족들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닌 이 민속 악기들은 문화재급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관장은 이런 악기의 일부를 직접 연주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박물관 곳곳에 배치했다. ‘문화재님’으로 모셔야 할 것 같은 아프리카 전통 악기 발라폰을 함부로 두드려도 될지 망설이던 기자의 손에서 채를 가져간 이영진 관장은 익숙하고 경쾌한 곡을 연주했다. ‘학교 종이 땡땡땡’이다.

“발라폰이라는 아프리카 악기에요. 나무판 아래 조롱박 같은 공명관이 있어서 다채로운 소리와 음을 만듭니다. 실로폰처럼 생겼죠? 혹시 실로폰이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진 악기인지 아세요? 이 문제를 내면 열이면 열 명은 다 틀립니다. 영어로 자일로폰(xylophone)이라고 하니까 다들 서양에서 만든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그 전신을 찾을 수 있지요.”

이 관장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 속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론이 연주하는 리라와 유럽 천사의 상징인 하프도 그 원형은 아프리카에서 만날 수 있다. 쿤디, 볼론 등 아프리카의 하프는 나무와 가죽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전쟁에 나서는 전사의 계급과 관련된 상징으로 기능을 했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는 사람의 뼈로 만든 다소 충격적인 악기도 있다. 불행하게 죽은 사람의 무릎뼈로 만든 몽골 악기 야산갈링은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는 주술적 역할을 했고, 사람의 해골로 만든 다마르는 몽골의 불교 음악을 연주했다.

이에 대해 이 관장은 “악기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구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종교 의식, 의료, 통신, 전쟁 등 인간의 삶 전반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 서양 악기에만 익숙해 악기를 연주용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악기는 곡 연주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강조했다.

이 관장은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을 통해 악기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과 악기사(史)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를 위한 노력으로 이영진 관장 등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직원들은 연구실로 사용되는 박물관 2층에서는 세계 민속 악기에 대한 연구, 악기 사전 제작, 학술 도서 출간, 찾아가는 교육 프로그램 구성 등의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악기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환자를 치료하고 적을 위협했다” -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이영진 관장

헤이리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의 이영진 관장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악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서양식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인류는 까마득한 과거부터 도구로 소리를 내며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환자를 치료하고 전쟁터에서 적을 위협하고 아군끼리 긴밀한 연락 체계를 구축했다. 서로 다른 음을 연결해 한 편의 음악을 만드는 것은 다양한 악기의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악기사(史)는 인류학의 한 갈래다.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학문이지만 유럽, 일본 등에서는 이미 폭넓은 연구가 진행돼 왔다. 이영진 관장은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절, 유럽, 일본 등 당시의 강대국들은 식민지의 민속을 조사하며 필연적으로 악기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한 국가임에도 우리 박물관 같은 곳이 있고 전 세계 115개국의 민속 악기를 전시하고 연구한다는 점은 독특한 현상이긴 합니다. 사실 국내에 100개 지역 이상의 유물을 갖춘 곳은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이 유일하고, 아시아를 통틀어도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이 관장은 구 소련 시절의 모스크바에서 근무하며 악기와 인연을 맺었다. 아시아 유목민족의 현악기 두다르를 구입한 것이 세계 악기 수집의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나도 일반인들처럼 국악기와 서양악기밖에 몰랐다”는 이영진 관장은 악기를 모으고 공부하며 대중들이 악기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잘못된 지식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다고 한다.

“우리 박물관을 찾은 학생들 중 바이올린, 피아노는 없느냐고 묻는 아이들이 많아요. 음악과 악기에 대해 배운 것이 그것뿐이라 그렇지요. 또 서양의 오케스트라만 완벽하고 나머지 악기 연주는 원시인 수준에서 둥둥거리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장구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민속 악기의 음악은 찬란한 문화 그 자체에요. 인도네시아의 타악기 오케스트라 가물란이 얼마나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지 잘 모르시지요?”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악기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폭넓게 전달하기 위해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찾아가는 박물관 프로그램을 2년째 운영하고 있다. 전국 100여 곳의 시골 학교를 찾아 외국에는 이런 악기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연주법을 알려주는 박물관 체험 교육이다.

“우리 박물관은 상당한 유물과 함께 음반, 도서 등 관련 학술 자료를 방대하게 갖고 있습니다. 단순한 악기 전시를 넘어 우리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발전시키고 다음 세대에 계승하는 것이 우리 박물관의 궁극적인 목표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유물과 자료를 확보하고 연구자를 키우는 중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한국 악기사 연구의 미래도 밝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박민경,한윤종 기자



▶ 관람안내
오전 10시~오후 5시30분 개관 (월요일 휴관. 전화 031-946-9838)
관람료/ 일반 5000원, 학생 4000원
홈페이지 www.e-musictour.com

▶ 찾아가는 길
주소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213
자동차 : 서울 강변북로-자유로를 타고 가다 통일동산(성동사거리)으로 들어와 헤이리 예술인마을 7번 입구에서 300M

본 콘텐츠는 <가족을 생각하는 TOYOTA(도요타)>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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