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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베인 상처가 더 아픈 거라고…

입력 : 2013-03-15 05:27:33 수정 : 2013-03-15 05: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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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콜라소녀’
홀로 된 노모와 삼형제 모인 고향집
원망·사랑으로 얽힌 애증의 관계에
어느 순간 목이 콱 막히는 짠한 울림
‘콜라소녀’(김숙종 작, 최용훈 연출)는 얼핏 제목만 보면 로맨틱코미디나 말괄량이 아가씨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네 삶과 가족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 연극이다.

작가는 “콜라를 마시고 나서 트림이 나올 때면 코끝이 찡하지 않는가. 너무 질척하거나 진한 감정 말고 딱 그 정도의 애잔함을 표현하고자 이 같은 제목을 붙였다”고 밝혔지만 연극을 보고 나면 다소 생뚱맞고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극이 남기는 여운이 몹시 강한 탓이다. 너무 가벼운 제목이라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혀 놓은 느낌이다.

흥행작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에 이어 김숙종 작가와 최용훈 연출가가 다시 손을 맞잡고 만든 ‘콜라소녀’는 지난해 서울연극제 공식 초청작으로 관객평가단의 인기상을 수상하는 등 상연 당시 매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 동원력을 입증한 바 있다.

‘콜라소녀’는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큰아들의 환갑을 맞아 다른 두 아들네 가족이 고향집 한자리에 모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은 잠시뿐 각자 자신들의 형편과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해대며 오해와 갈등, 반목과 원망의 얼굴을 내민다. 이 연극의 힘은 가족 간의 다툼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 있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간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가족 간 미움의 골이 더 깊은 법이다. 기대를 저버리는 배신감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만 형이죠. 형제가 아니라 이건 웬수여, 웬수.” 형제간의 갈등은 그들의 아내, 즉 형수와 제수가 있어 각각의 처지가 더 복잡 미묘해진다.

“그때는 열심히 하면 잘살 수 있다는 꿈이라도 있었제. 지금은 아무리 해도 뱅뱅 도는 풍뎅이 같어.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일만 했는데 요 모양 요 꼴이여.”(둘째)

“비위 맞춰가며 밤새 술 퍼마시느라 위장 다 버리고. 쉬운 일이 어딨겄어. 이번이 마지막이여. 기반 잡을 수 있겄어. 한 번만 더 도와줘.”(셋째)

“엄니 살아있는 한 이 땅 못 판다. 너들은 여가 돈으로밖에 안 보이냐?”(첫째)

치매 탓에 형제 간의 갈등을 알리 없는 노모의 한마디가 절묘하게 국면을 타개한다.

“나 죽거든 무덤 쓰지 말고 화장해서 여기 뿌려라.”

원망과 사랑이 쌓였다 풀어지기를 거듭하는 것은 그들이 가족이기에 함께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관객에게 연민과 따스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태어난다는 환갑의 인생에서 그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가족의 일상이 담담히 무대 위에 펼쳐진다.

노모는 먼저 죽은 딸 명희의 환영을 보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명희의 모습은 그녀에게만 보인다. 삼형제도 자주 명희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극중에선 명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따라서 기본 배경을 알고 보면 이해가 쉽고 재미도 배가된다.

명희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낳은 딸이고, 친모는 명희를 버리고 떠났다. 명희가 여덟 살 정도 아이의 머리 스타일을 하고 등장하는 것은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정도 나이일 것이라는 설정 때문이다. 명희는 끊임없이 가족들 안에 들어오고 싶어 했지만 어쨌든 밖에서 들어온 자식이기에 오빠 삼형제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노모가 오래도록 명희를 마음속에서 떠나 보내지 못한 것도 그래서이다. 겉으로는 ‘내 딸’이라고 했지만 위로 둔 삼형제처럼 진심으로 자기 자식이라 여기지는 못했다.

마지막에 서로 화해하는 부분이 이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나루터로 소풍 나온 가족이 사진을 찍을 때 명희가 나타나 함께 찍힌다. 명희는 살아있을 때 가족사진 한번 찍지 못했다. 들어온 자식이라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은 이제 명희가 진짜 가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다. 명희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녹여내지 않은 것은 이 연극이 이미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대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잔잔한 이야기로 유연하게 흐르다가 어느 대목에 이르면 목이 칵 막히면서 눈물이 흐른다. 대학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힘이 보태져 극에 무게가 실린다.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 김용선이 할머니 역을, 2011년 서울연극제 ‘만선’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장용철은 속 깊은 첫째아들을, 2012년 서울연극제에서 본 작품으로 연기상을 받은 박성준이 능청스러운 둘째아들 역을 맡았다.

공연기획사 코르코르디움과 극단 작은신화가 공동제작했다. 4월 14일까지 대학로 학전블루 무대에 오른다.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6시, 일요일 오후 3시. (02)889-3561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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