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책 권하지 않는 사회… 출판계 “빈사상태” 아우성

입력 : 2012-11-17 02:04:06 수정 : 2012-11-17 02:04:0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불황·제살깍기 할인경쟁에
출판사 매출 감소·자본잠식까지
동네서점 줄줄이 폐업 70% 급감
공공도서관 책구입비 G20 중 최저
도서정가제 정착·유통질서 확립을
“좋은 책은 한 세계 그 자체이다. 개개인에겐 지식과 정보가 많은 멋진 친구이기도 하다. 좋은 책을 읽는 순간들이 인생에 축적되면, 뜻하지 않는 시련과 고통에 빠졌을 때 그 순간들을 견딜 힘과 앞으로 나아갈 힘을 동시에 준다.”

‘엄마를 부탁해’로 세계적 작가로 명성을 날리는 소설가 신경숙의 말이다. 책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동서고금을 초월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책 만드는 사회적 기반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출판 분야는 정말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게 우리 현실이다. 고은·신경림·김용택·황석영·유홍준 등 유명 문인들은 출판에 대해 정부가 올바로 지원하고 육성해야 할 ‘국민교육사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주무 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이고, 기획·재정 분야 고위 관리들은 ‘책이 공공재인가 교환재인가’를 놓고 논란만 일으키고 있다고 출판사 대표들은 비판한다. “출판도 산업이니 시장 원리에 맡겨야지 무슨 소리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국가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고위 관료들이라고 출판계는 비난한다.

경제난 탓에 독자는 물론 공공기관마저 책을 사지 않는 바람에 출판계는 빈사 상태 그대로다. 2011년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를 통해 책을 납품한 출판사의 40%가 전년 대비 매출액이 감소했다. 매출액 감소 비율은 27.3%였다. 이 조사는 경제난이 출판계에 본격 영향이 미치기 시작한 2011년 초순 통계이니, 2012년 하순인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출판사가 매출액 감소와 자본 잠식 상태에 놓여 있는 게 현실이다.

출판사로부터 실제로 책을 사주는 전국의 서점들이 얼마나 줄었는지 통계를 보면 심각하다.

11일 출판마케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전국 서점은 1994년 5683개로 정점을 찍었다. 이어 2003년 2247개로 줄어, 2011년에는 1752개로 70%나 줄었다. 아파트나 주택가 가까이에 있던 동네 서점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대형 서점 위주의 업계 추세가 아니라 출판계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공공도서관 숫자나 도서구입비 역시 G20(주요 20개국) 국가군 가운데 최하위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759개로, 인구 비례로 따져 꼴찌 수준이다. 2011년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 669억원. 국민 1인당으로 따져 1338원인데 선진국에 비해 3분의 1 수준. 이 정도의 도서 구입비는 전투기 한 대 구입할 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이다.

‘출판문화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든 홍영태 비즈니스북스 대표는 “출판사의 경영 악화와 서점 수 감소는 다양한 좋은 책의 출판 및 구매 접근성을 떨어뜨려 실독자인 국민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다”면서 “독서문화진흥법까지 제정해 책 읽는 나라를 만들자고 하면서, 그 바탕이 되는 출판 관련 제도의 정비는 뒷전이다”라고 지적했다.

홍 대표는 이어 “준공공재인 책의 가격 제도는 소비재 상품과 같은 할인경쟁의 시장질서가 아닌 공공적 가격제도와 저자-출판사-서점-독자 등 출판 생태계 이해 관계자가 고루 이해할 수 있는 유통질서 확립이 절대 필요하다”고 했다.

출판인들은 출판문화 살리기의 첫걸음은 도서정가제 정착이라고 본다. 도서정가제는 프랑스나 독일 등 문화선진국이 실시하는 출판 진흥의 대명사격이다. 경제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영어권 국가를 제외한 프랑스·독일·스페인·이탈리아·일본 등 16개 국가에서 자국어 출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시행하고 있다.

출판인들은 책값 할인경쟁은 제 살 깎아먹는 짓이자, 결국 출판산업 전체가 공멸하는 것이라며 철저한 제도적 보완과 정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출판인들은 서울 시내 청계광장을 비롯해 올해만 수십 차례 책읽기 문화 축제를 열어 출판산업 살리기에 전력을 다하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 도서정가제 전면 확대를 골자로 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26일까지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 대표로 발의되는 개정안 초안은 ▲도서정가제 적용에 18개월 기한 폐지 ▲실용서·학습참고서 등 전분야에 정가제 적용 등이 주요 내용이다. 현행법에서는 발간 18개월 이전인 신간은 10%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으나 이를 18개월 이후 구간으로도 확대하고, 실용서 등 전 분야에 정가제를 적용해 할인율을 10%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구간을 중심으로 50∼60%를 넘나들던 책값 할인율이 10% 이내로 제한되면서 출판 유통 구조가 투명해지고, 신간 창작도 활기를 띨 것으로 출판계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마일리지 할인’ 여부를 놓고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 서점간 절충안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도 일부 진통이 예상된다.

정승욱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