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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미술 대중화 힘쓰는 이주헌 서울미술관 초대 관장

입력 : 2012-11-13 17:45:21 수정 : 2012-11-13 17: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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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쉽게 소개하려 책 내기 시작
일반인 관심 크게 늘어난 것 느껴”
199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한 대중예술서적 시장에서 미술평론가 이주헌(51·서울미술관 관장)을 빼면 이야기가 싱거워진다. 이 관장은 1995년부터 현재까지 30권 이상의 미술 관련 에세이, 기행서, 교양서 등을 펴낸 인기 작가다. 그는 미술작품을 매개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삶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역사와 사회, 정치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미술은 삶이 되고 삶은 미술이 된다.

서울미술관 이주헌 관장은 17년간 30권이 넘는 저서로 미술 대중화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그는 서울미술관을 관람객이 주인인 쉼터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남정탁 기자
◆미술과 삶을 하나로…아트 스토리텔러

이주헌 관장은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한겨레신문 문화부 미술 담당기자를 거쳐 학고재 아트스페이스 서울 관장을 지냈다. 서양화를 졸업한 그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 기자를 선택한 것은 생계 때문. “대학 때 화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했는데 졸업 후에도 화가로서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할 형편이 아니었어요. 미대 졸업장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낮에 일하고 저녁에 그림을 그리면 되겠다는 생각에 기자를 선택했지요.”

기자가 된 이후에도 그림을 잊지 못한 그는 미술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관장에게 그림 이야기를 쓰는 것은 마치 드로잉과도 같았다. 저서 ‘이주헌의 아트 카페’ 글머리에는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그림을 전공했고 그림을 그리던 습관이 남아서였을까, 자유롭게 사고를 전개하고 느낌을 표현하는 게 나에게는 수필보다는 드로잉이라는 느낌으로 먼저 다가왔다. (…) 글을 쓴다고 해도, 삶과 세상에 대한 상념을 문자로 표현한다 해도, 나는 그림을 보며 이를 풀어나간다. 이미지가 언제나 내 글과 함께한다. 이것 또한 내가 쓰는 글이 자꾸 드로잉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직접 그리진 않아도 이 관장은 평생 미술과 함께하고 있는 셈. 그가 그토록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을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웃음)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보는 것을 좋아했고, 아름다운 색을 보면 환희에 빠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미술은 도저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자신을 이토록 행복하게 하는 미술이 사람들에게는 벽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 관장이 미술 에세이를 펴내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미술이 정말 아름답고 좋은 것인데 현대 미술에 대한 벽이 높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어떻게 하면 미술을 쉽게 소개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책을 쓸 때 미술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엮여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단지 미술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미술과 연계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아우르려고 했어요.”

이렇듯 미술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에게 붙은 별명은 ‘아트 스토리텔러’. 미술 서적으로는 흔치 않게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쓴 지 17년이 지난 지금, 미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일단 미술 자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과거에는 사람들이 미술관을 낯설어 하고 미술관의 문턱도 높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미술관을 쉽게 찾고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좋잖아요. 경제가 성장하고 정신적 여유가 뒷받침돼야 즐길 수 있는 게 미술인데 그만큼 우리나라 수준이 높아진 것 같아요.”

◆서울미술관…미술 대중화를 위한 터전

미술의 대중화를 위한 글쓰기에 힘써온 그는 최근 들어 더 바빠졌다. 8월 말 서울 부암동에 새로 문을 연 서울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서울미술관은 유니온약품그룹 안병광 회장이 오랜 구상 끝에 세상에 내놓은 열린 문화 공간이다. 안 회장은 서울미술관을 자신이 지난 세월 동안 수집해 온 명작들로 채우는 동시에 이 관장에게 미술관 살림을 맡겼다.

서울미술관은 이 관장이 그간 꿈꿔 온 미술 대중화를 실현해볼 수 있는 터전이다. “지금까지 대중적 글쓰기에 주력해 왔으니 미술관 역시 대중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구상 중이에요. 미술관 측이 양식이나 미술 사조, 유행에 얽매여 미술관을 운영하다 보면 관객과 유리되고 관객이 중심인 미술관을 만들기 어렵거든요. 관객들이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 어떤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를 가장 중점에 두려고 해요.”

미술 사조뿐만 아니라 장르를 넘어서는 전시도 계획 중이다. “관람객들에게 유익하다면 미술이라는 장르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도 전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화나 영화를 주제로 전시할 계획도 구상하고 있고요. 관람객들에게 의미가 있는지 여부가 전시의 기준이에요. 관객들 삶에 통찰을 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중요한 전시 주제가 될 수 있어요. 미술사적으로는 중요하지만 관객들에게 와 닿지 않는 전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관전으로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을 기획했다. ‘둥섭’은 ‘중섭’의 서북 방언이다. 전쟁 중이던 1952년 12월 부산 르네상스다방에서 동인전을 열었던 이중섭·한묵·박고석·이봉상·손응성·정규 등 근대 미술의 거장 6명을 기리는 전시다. 21일까지 서울미술관 제1 전시실에서 열린다.

미술관 첫 전시를 장식할 작가로 이중섭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젊은 작가와 해외 작가들이 미술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잖아요. 유럽, 미국적인 세련됨과 아우라가 선망이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근대 시기에 중요한 작가가 많이 있었어요. 특히 이중섭 화백의 경우 작고한 지 무려 5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그 아성을 뛰어넘는 작가가 나오지 않고 있을 만큼 우리 문화에 끼친 영향력이 엄청나요. 반면에 대접은 소홀하단 생각이 들어서 이중섭 전시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당시 예술가들이 위대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950∼60년대 한국은 6·25전쟁을 겪으면서 무척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그럼 분명히 미술도 암흑기를 겪어야 하는데 오히려 뛰어난 작가들과 작품이 많이 나왔어요. 당시 작가들은 시멘트 포대기를 깔고 자며 그림을 그리고 마땅한 장소가 없어 다방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거든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예술 혼을 불태운 작가들이라 더욱 위대한 것 같아요.”

서울미술관에는 미술 감상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석파정(石坡亭·서울시 유형문화재 26호)이 대표적인 예. “서울미술관에는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썼던 석파정이 있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에요. 흥선대원군 별장으로 쓰였을 만큼 경관이 아름답고 서울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공간이에요. 서울미술관이 미술관과 석파정을 찾은 관람객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정아람 기자 arbam@segye.com

■ 이주헌 관장은

▲1961년 서울 출생 ▲1984년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1986∼1988년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1988∼1993년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1995∼2004년 학고재 관장 ▲2009∼ 양현재단 이사 ▲2012 서울미술관 관장(현) ▲저서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2’ ‘미술로 보는 20세기’ ‘이주헌의 아트 카페’ ‘지식의 미술관’ ‘역사의 미술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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