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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5월 4000 탐험 나서는 동국대 윤명철 교수

입력 : 2012-04-03 17:50:31 수정 : 2012-04-03 17: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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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서 출발 50여일 대장정
선조들의 해양활동 자료 탐사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요. 혹시 다음에 또 탐험에 나설 생각은 아니겠죠.”

글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실감하게 하는 봄날. 동국대 경영관 연구실에서 만난 이 대학 교양교육원 윤명철(58) 교수는 물음에 “글쎄요”라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5월 초 필리핀 라오악에서 출발해 대만, 일본 오키나와, 제주를 거쳐 여수까지 ‘3, 동아문명호(東亞文明號)’라는 뗏목을 타고 동남아 해역과 동아시아 바닷길 탐험을 시작한다.

윤명철 교수는 “뗏목 항해는 우리 민족이 추구한 조화와 통일을 확인하며 자연과 하나되는 작업”이라며 “속도가 중시되는 현대사회에 느림의 미학이 주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항해거리만 4000㎞,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필리핀 현지에서 벌목해 제작한 길이 15m, 폭 6m의 대나무 뗏목만으로 항해한다. 참가 인원은 그를 포함해 8명이다. 6억원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뗏목 항해는 시간당 평균 2㎞ 나아갈 경우 예상 항해기간은 6월 중순까지 50일이 걸린다.

‘60세 청춘’이라는 말도 있지만 풍랑과 파도와 맞서야 하는 바닷길 탐험은 이순(耳順)의 나이를 앞둔 그에게는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젊은시절 래프팅 광이었다는 그는 이미 1983년 거제도에서 일본 대마도 규슈의 오도열도 구간을 뗏목 탐험을 하기도 했고, 96년에는 중국 저장(浙江)성에서 산둥(山東)성 츠산(赤山)까지 16일간 ‘황해문화’ 뗏목 학술탐사도 벌였다. 이듬해에도 ‘황해문화’ 뗏목 학술탐사를 위해 24일간 중국 저장성 저우산(舟山)군도에서 흑산도를 경유해 인천까지 항해했다. 2003년에는 중국 저장성에서 인천을 경유해 제주도와 일본까지 뗏목 ‘장보고호’를 타고 43일간에 걸쳐 탐험을 펼치기도 했다.

중간에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젊은이도 도전하기 쉽지 않은 바닷길 탐험에 대해 그는 “우리 민족의 해양활동이 활발했다는 실증자료를 찾아내 한국인은 물론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라고 목적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현재 한민족학회 회장이자 단군학회 부회장을 맡아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정신세계를 발굴하고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학자다. 그래서인지 윤 교수가 강조하는 한민족을 새롭게 조명한 사관으로 그린 미래는 다분히 자의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역으로 그의 말에는 한민족의 자긍심과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신념체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그 한 방법으로 택한 뗏목탐험의 미학과 정신적인 가치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뗏목탐험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은 해양활동이 매우 활발했고, 또 지금도 해양력이 강하고 잘 활용하기 때문에 발전한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서 한민족의 해양활동이 매우 활발했다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들을 찾아내 한국인들은 물론이고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또 고대국가 시대에 이르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오키나와와 제주도는 아주 활발하게 교류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03년 ‘장보고호’ 항해 당시의 윤명철 교수.
―첨단기술이 발달한 이 시대에 왜 뗏목인가.

“뗏목탐험을 통해서 인류문명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일종의 비(非)문명이다. 뗏목은 삼각파도 등이 아니면 전복되거나 침수되지 않는다. 물결과 하나가 된다. 일종의 표면장력 때문이지만 결과적으로 바다 전체와 하나가 되기 때문에 전복되지 않는다.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도 행위자인 인간과 대상체인 바다 사이에 끼인 중간매개인 뗏목 때문에 한 덩어리가 된다. 인간과 바다, 뗏목 간의 삼위일체는 우리 민족이 추구한 가치를 보여준다.”

―뗏목을 통해 발견한 한민족은 무엇인가.

“뗏목은 주체와 대상이 갈등과 투쟁을 벌일 필요가 없고, 조화와 상생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고대문화가 추구해 왔고, 특히 우리 민족이 지향했고 실천한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과 바다의 매개체인 뗏목이 주는 ‘3’이라는 숫자의 안정감 등은 우리 민족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는.

“단군신화에서 곰이 3·7일 만에 인간으로 변한 이야기, 고구려 건국신화 삼족오 탄생 의례 등은 일상 속에서 표현된 ‘3’이라는 숫자와 연관이 깊다. 그래서 뗏목이름을 ‘3, 동아문명호’라고 한 것이다.”

―뗏목이 현대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문명적으로 ‘느림의 가치와 미학’을 보여준다. 태풍을 만나면 뗏목은 역동적으로 움직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람과 물결에 맡기기 때문에 느리게 항해한다. 이와 함께 문명이 발달하면서 부족한 실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가상세계에서 가상체험에만 익숙하다. 그러나 인간은 실재적이고 실존적인 존재이므로 실체험의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그래야 존재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삶의 소중함도 절감할 수 있다.”

―단순 탐사가 아닌 해양학술탐사인데, 어떤 해양성을 발견하려고 하나.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환경을 보자. 중국, 일본 모두 바다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반도사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한민족이 활동한 역사공간을 한반도로 축소시켰다. 해양활동이 없거나 미약한 것으로 간주해 대륙과 해양에 대한 연구가 미흡했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스스로 범위를 축소해 왔다는 게 문제다. 해륙사관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해륙사관이란.

“내륙과 해양을 유기적인 관계로 보는 사관을 말한다. 우리 역사에서 해양활동이 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족 자의식이 상실돼 있다.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그동안 타인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봤다면 이제는 그런 관점을 지양하고 우리의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고구려가 21세기 한민족이 가야 할 표본을 제시했다고 본다.”

―고구려를 강조하는 이유는.

“흔히 고구려를 말할 때 경제가 약탈 경제라거나 군사적으로 팽창을 추구했던 국가라고 한다. 또 고구려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뚜렷했던 계급사회라고 말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구려는 무역과 문화가 발달한 국가였다. 그리고 다민족 공동체 사회였다. 선비족, 거란족, 말갈족 등 다민족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용의 논리가 필요했고, 그 포용이 바로 조화와 통일이라는 우리 민족이 생성될 때 부터 추구한 가치였다. 요즘 우리나라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다. 고구려는 21세기 한민족이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글로벌 시대다.

“우리 민족이 지향한 것과 인류 공동선과 방향이 다르지 않다. 오히려 21세기 우리는 민족종교와 사상을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의식을 고양시켜야 한다. 뗏목 항해는 외견상 탐험으로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조화와 통일, 느림의 미학 등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정신적 시도다.”

―앞으로 계획은.

“이달 하순쯤 필리핀으로 가서 뗏목 항해를 준비해야 한다. 최근 작업 논문들을 주제별로 모아 8권의 해양논문선집을 출간했다. ‘한민족 바다를 지배하다’(1권)를 비롯해 ‘해양사연구방법론’(1권)도 발간했다. 이 모두가 반도사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역사학 논문 발표는 자제할 생각이다. 뗏목탐험을 하는 동안 학술대회를 몇 차례 하겠지만 종교성과 정신적인 가치가 담긴 글을 많이 쓰는 데 매진할 계획이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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