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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패배 ‘파란만장’… 사람냄새 나는 소설

입력 : 2012-03-16 19:57:44 수정 : 2012-03-21 10: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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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전민식 작가
주인공 ‘도랑’의 밑바닥 인생은 작가 개인적 경험토대로 그려
“우리사회 99%에 대한 이야기”… 부인도 세계청소년문학상
소설 속 주인공과 작가의 삶이 이보다 더 비슷할 수 있을까.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은행나무)의 스토리가 작가 전민식(47)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닮았다.

이삿짐센터 직원, 일용노동자, 대필작가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다가 지천명을 앞두고 40대 후반의 나이로 화려하게 등단한 전씨의 삶은 그 자체로서 한 편의 소설이다.

◆끝없는 도전과 패배 속 진한 사람 냄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는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30대 노숙자 ‘임도랑’의 얘기다. 대형 컨설팅업체의 잘나가는 회사원 도랑은 매력적인 여성 ‘진주’와 사귀다가 그만 회사 기밀을 유출하고 만다.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았던 진주가 실은 ‘산업스파이’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도랑은 해고와 함께 전 재산을 손해배상금 명목으로 회사에 주고 빈털터리가 된다. 업계에서 ‘요주의인물’로 찍힌 그는 정규직 사원 입사를 포기한 채 고깃집 불판 닦기 등 아르바이트만 닥치는 대로 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그대로 끝날 것 같았던 도랑의 답답한 인생에 갑자기 기회가 찾아든다. 부잣집에서 기르는 고급 애완견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라마는 개 중에서 가장 비싸다는 티베트 사자견으로, 소설 속에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는다”고 묘사된다. 까다로운 라마가 의외로 도랑을 잘 따르자 흡족해진 개 주인은 거액의 수고비를 건넨다. 라마를 산책시키는 아르바이트만으로도 대졸사원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게 된 도랑은 차츰 ‘라마는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자만심에 사로잡힌다.

소설가 박범신씨 등 심사위원들은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에 대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정서를 지닌 소설이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패배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을 읽고 싶다’는 바람을 충족시켰다”고 후한 점수를 줬다. 앞서 전씨는 “우리 사회 1%가 아닌 99%에 대한 이야기”라며 “99% 사람의 삶이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가, 돌파구는 무엇인가 묻고 싶었다”고 밝혔다.

소설가 전민식씨는 “가장의 역할을 포기하고 골방에 처박혀 책만 파고 글만 쓴 나는 참 나쁜 남자였다”며 “이제는 나와 내 가족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점치는 좋은 남자가 되어 보려 한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제공
◆20년 무명작가 설움에도 “후회는 없다”

전씨는 13일 서울 종로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우물을 파면 결국에는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믿을 수 있게 해준 심사위원들에게 고맙다”는 소감을 전했다. 각종 문학상 심사에서 9번 떨어지고 10번째에 비로소 당선한 그를 두고 문학계 안팎에서 ‘9전10기의 인생역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씨는 “내게 재능이 없는 것 아닌지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후회는 전혀 안 했다”는 말로 문학을 향한 ‘무한애정’을 드러냈다.

전씨는 대학 졸업 후 20여년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소설에 그려진 도랑의 밑바닥 인생 대부분은 전씨의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한다. 도랑이 의뢰인의 요구대로 친구, 애인 등 온갖 역할을 대행해주는 심부름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처럼 전씨도 남의 이름으로 글을 써서 먹고사는 대필작가 노릇을 꽤 오래 했다. 그가 대필한 책만 50권이 넘는데 국회의원, 배우의 자서전에서부터 전직 조직폭력배 회고록, 심지어 장편소설까지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그가 대필한 책 중 베스트셀러도 여럿 나왔다고 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사실 이미 계약한 대필 건이 아직 남아 있어 요즘도 작업을 하고 있어요.(웃음) ‘너는 평생 대필작가, 유령작가로 살다가 끝날 것’이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는데, 보기좋게 뒤집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먼저 소설가로 등단한 부인 최민경씨도 2010년 제8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는 등 부부가 나란히 세계일보와 인연이 깊다. 22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열리는 시상식에는 심사를 담당한 선배 작가가 참석해 전씨 앞날을 격려할 예정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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