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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자화상·인간의 욕망 ‘형상화’

입력 : 2012-03-06 00:39:24 수정 : 2012-03-06 00: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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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주자로 주목 배영환·김기라 전시회 배영환(43)과 김기라(38)는 한국미술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는 작가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해 재개관한 삼성미술관 플라토(옛 로댕갤러리)는 한국 미술가의 첫 개인전 주인공으로 배영환을 선택했고, 두산아트센터(1층 두산갤러리)는 김기라를 조명하는 전시를 특별히 마련했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인간’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영환 작가는 우리가 싫든 좋든 타인이나 사회가 규정해준 틀 속에 자신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의 신작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은 도시 속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황금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처럼, 도시는 사람들을 유인한다. 텅빈 링에서 ‘섀도 복싱’에 몰입하는 자는 바로 도시인이다.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강한 자기를 확인해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버려진 가구의 화려한 자개 장식 등을 이용해 만든 통기타 ‘남자의 길’ 연작은 젊은 날의 낭만적 꿈의 상징인 통기타를 접고 성공과 가장으로서의 의무만을 짊어져야 했던 성인 남성의 자화상이다. 

전시장 앞에 선 김기라 작가. 그는 “신화와 종교. 사회, 경제구조에 의해 파생된 이미지나 성상들이 인간의 존재와 삶을 확장시키고 ‘공동선’을 향하게 하기보다는 망령이 되어 보이지 않게 인간을 제약하고 규제하며 욕망을 부추긴다”고 보고 있다.
작가는 이를 위무하고자 한다. “미술은 유행가처럼 위로와 치유의 도구가 돼야 합니다.” 그는 흰 캔버스 위에 깨진 소주병과 알약, 본드 따위로 ‘물망초’(조용필), ‘크레이지 러브’(팝송) 등 흘러간 노래의가사를 써 붙였다. 작품 ‘걱정―서울 오후 5:30’은 종소리가 퍼져 나가는 흰색 텅 빈 종루다. 서울 시내 12군데 종각의 소리를 채집해 도시라는 전장에서 살아가는 중생의 번뇌를 위로한다.

작가는 자신의 뇌파를 측정한 그래프와 우연하게 주물러 만든 도자 조각(작품 ‘오토누미나’)이 대자연의 산 모습과 일치하는 것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내면에도 예로부터 선함과 완전함의 표상으로 여겨져 온 산의 형상과 일치하는 신성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을 가시화한다. “우리 모두가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는 존귀함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지요. 우리 모두가 같음이 아닌 다름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죠.”

‘황금의 링…’ 작품에 기대선 배영환 작가. 그는 “예술가의 작업은 우리 삶의 비참함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우리 안의 존귀함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연민을 바탕에 깔고 있는 작가는 작품 ‘바보들의 배’에서 우리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포기했던 ‘나’를 모아 연꽃 같은 조각배를 만들어 전시장 바닥에 띄웠다. 난파선 같이 조각 난 ‘나’가 연꽃으로 피어나는 모습이다. “초라한 우리 안의 존귀함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5월20일까지. (02)2014-6552

김기라는 역사·신화·종교에 관한 서적에서 발췌한 신상(神像) 이미지들을 손으로 찢은 다음 이어붙인 사진 콜주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얼굴 반쪽은 그리스 여신, 나머지 반은 불상이기도 하고 로마 신상의 복부 아래로 이집트신의 다리가 뻗어 있기도 하다. ‘스펙터-몬스터’ 시리즈다. ‘스펙터(specter)는 망령(亡靈)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종교가 공존과 조화보다는 오히려 갈등과 전쟁을 유발했던 과거사를 투영한 것이다.

“공동선은 허구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욕망일 뿐이죠. 이를테면 신화나 신앙, 종교는 인간이 공동선을 추구하려고 고안한 것인데, 오히려 인간을 옥죄고 있잖아요. (잘못된 양상으로 변질된) 요즘 교회를 보세요. 사원의 종교라기보다 종교의 사원으로 변모되어 버렸어요. 조화와 공존 없는 발전은 폭력입니다. 그 욕망의 폭력 안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이죠.” 신화와 종교에서 파생된 성상(聖像)들이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하고 좋은 ‘공동선’을 향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망령이 돼 인간을 옥죄며 욕망을 부추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종교와 이념 등이 인간 자체를 소외시키고 있는 점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예술의 역할이 있다면 진정한 휴머니즘을 각성시켜 주는 일일 겁니다. 욕망의 우상을 드러내 주는 것이지요.” 전시장에는 작가가 지난 10년간 세계 20여 개국에서 수집한 300여 종의 신상 앤티크가 함께 전시돼 있다. 29일까지 (02)708-5015 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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