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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소리꾼 이자람·연출가 남인우

입력 : 2012-01-24 20:51:12 수정 : 2012-01-24 2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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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극 ‘사천가’의 이자람이 너무 궁금하다고 했더니, 두 사람을 함께 만나라는 조언을 들었다. 다름 아닌 소리꾼 이자람(33)과 연출가 남인우(38) 콤비였다. 남인우는 소리꾼 이자람에게서 작가적 능력을 발견하고 전회전석 매진의 판소리극 ‘사천가’(2007) ‘억척가’(2011)를 함께 만들어낸 연출가다. 하지만 신년 초부터 그들의 살인적인 스케줄은 연예인 저리 가라였다. 뮤지컬 ‘서편제’ 출연(3∼4월)에 이어 ‘사천가’ 지방공연(3∼4월)과 ‘억척가’ LG아트센터 공연(5월), ‘사천가’ 프랑스 한달 투어공연(11월)까지 올 한 해 이들의 공연 목록은 열거하기도 숨가쁠 정도다. 2월 자신의 밴드 콘서트를 앞두고 포크록 앨범을 녹음 중인 이자람과 최근 연극 ‘소년이 그랬다’ 공연이 끝난 남인우의 일정을 맞추느라 2주일을 기다렸다.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이뤄진 두 사람과의 인터뷰는 한 편의 공연이 탄생하기까지 작가와 연출, 배우의 협업과정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판소리극의 현대화를 이끌고 있는 소리꾼 이자람(사진 오른쪽)과 연출가 남인우. 시도 때도 없이 서로에게 전화하며 모든 걸 확인받는다는 그들은 “한복 입고 길거리를 다니고 싶진 않다. 동시대적인 스토리가 있는 판소리를 만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재문 기자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남다르다. 이자람에게 남인우는 “매순간 모든 걸 확인받고 칭찬받고 싶은 사람”이다. 자신의 작업에 의미를 불어넣고 숨쉬게 하며 인생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동반자라는 것이다.

반면 남인우는 이자람을 두고 “소리를 풍경으로 그려낼 줄 아는 아티스트”라고 표현한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하는 ‘내 이름 예솔아’를 불러 네 살 때 이름을 알린 후 고 은희진 등 여러 명창들로부터 사사하며 현재 서울대 국악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국악 엘리트 이자람. 그에게서 자유로운 예인의 기질을 끌어낸 남인우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사천가’ ‘억척가’ 같은 걸작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사람이 언제 처음 만났나.

“2005년 내 첫 창작판소리 ‘구지 이야기’로 처음 만났다. 처음 써본 대본이었는데, 작가로서 칭찬받았다. 전문 연극연출가가 와서 칭찬해주니 기분좋더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마다 컨펌받아야 하는 사람이 됐다.”(이자람)

“이자람이란 사람에 깜짝 놀랐다. 내가 듣는 귀가 예민해서 ‘귀 명창’이라 불리는데, 이자람의 ‘구지 이야기’를 보면서 소리꾼이 작가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판소리극이라는 게 말과 음이 정확히 붙어서 호흡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 어떻게 음악으로 가는지를 보여주더라. ‘사천가’ ‘억척가’에서 이자람을 작가로 끝까지 밀어붙인 건 내가 가장 잘한 일이다.”(남인우)

―‘사천가’ ‘억척가’는 독일의 브레히트 희곡을 현대적 판소리로 탈바꿈시켰다. 작품을 쓰는 데만 8개월 걸렸다는데.

“연극의 장르를 판소리적 장르로 번역하는 일이 필요했다. 단순 번역 수준이 아니라 문화적 번역이랄까. 판소리 사설뿐 아니라 연극적 상상과 변형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자람과 8개월 작업하는 동안 행복했다. 작가의 대본을 일방적으로 받아서 연출하는 게 아니라 함께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연출로서 드라마 구조와 전체적 흐름을 잡아주면 자람은 디테일을 잡는 데 천재적이다. 연출이 여기서 이런 감정인데, 그러면 몸으로, 말로 만들 줄 안다. ‘억척가’의 용병대장 움직임도 그렇게 나왔다. ‘역삼각형 럭비선수 느낌인데’라고 말하자, 자람이가 즉석에서 몸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어허어허’ 하고 움직이는 거다.”(남)

“서로 말이 통하는 거지. 근데 남 연출이 못하겠다고 잠적했다. 난 확인받고 칭찬받아야 앞으로 가는 성격인데, 전화도 안 받고 딴청을 피워 잡으러 다녔다.”(이)

“그건 전략이었다(웃음)”(남)

―이자람은 ‘사천가’ ‘억척가’의 작창과 1인 15역 배우를 도맡았다. 배우 이자람과 작가 이자람, 천재적인가.

“이자람은 노력하는 천재다. 배우로서의 이자람이 더 천재적인 것 같다. 작창자로서의 이자람은 그간 밴드활동, 무용, 배우 등 다양한 무대 경험이 바탕이 됐다면 배우로서의 이자람은 즉흥적으로 몸과 말로 만들 줄 안다. 어휴, 이자람이 아니라 ‘이 잘난’이다.”(남)

“남 연출은 배우 이자람에게 작창가 이자람이 만든 걸 설명해준다. 내가 본능적으로 만든 것의 이유를 찾아주는 사람이랄까. 남 연출에게 판소리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봄날의 잔디밭 걸어다니면서 따라해봐요’ 하면서 심봉사가 부인 장례를 치르고 난 대목의 “부엌이 휑하는∼” 곡조를 불렀다. 그때 남 연출이 ‘음과 가사가 착 붙어 그림을 그린 듯하다’며 감탄하더라. 내가 생각없이 숨쉬던 공기가 들고나가는 과정을 시각화하며 분석해주는데, 내가 다시 거꾸로 배웠다. ‘아, 내가 하던 작업이 그런 것이었구나’ 하고.”(이)

―‘사천가’ ‘억척가’에는 이 시대 세태 풍자를 실감나는 아이디어로 녹여냈다. 작가와 연출, 누구의 것인가.

“원작에 나오는 비행사를 소믈리에로 바꾸면 어때, 라고 하면 다음날 자람이 대본을 써서 나타났다. 꼬박 하루를 만화방에 가서 ‘신의 물방울’을 섭렵하고 맞춤인 대목을 건져왔다. 무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걸 자랑하지(웃음). 머리에 연필 꽂고 브레히트에 대한 논문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만 읽으라고 할 정도였다. 연출가한테 이쁘게 보이려고 무지 노력한다.”(남)

“‘사천가’를 번갈아 공연할 소리꾼 두 명을 뽑았는데 남 연출이 그들에 관심을 보이니 열받아 죽겠더라. 그래서 연출한테 인정받으려고 명동 나가서 다시 캐릭터를 하나하나 연구했다. 뚱뚱한 사람들은 뒤따라가서 몸짓 따라하고 선교하는 사람들 흉내도 내보고.”(이) 

―사천가 대본은 브레히트 원작의 기본 구조만 가져왔을 뿐 설정이 상당부분 바뀌었다. 특히 창녀가 아니라 뚱녀로 바꾼 부분은 외모지상주의 한국을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다.

“다 내 친구 얘기고 내 얘기고. 뚱뚱하지 않아도 외모 콤플렉스 있지 않나. 뮤지컬 ‘서편제’ 연습 중인데, 앙상블들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 나도 턱깎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이)

“왜 고전 속 여자들은 창녀 아니면 성녀냐, 너무 짜증나지 않냐고 얘기했다.”(남)

―이자람은 무대에서 좌중을 쥐고 흔든다. 끼도 타고 났나.

“나 원래 사람 웃기는 것 못한다. 처음엔 “내가 광대가 될 수는 없다”고 그랬을 만큼. ‘사천가’하면서 능청이 많이 늘었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 늘 떠는데, 남 연출이 ‘너를 믿고 관객을 믿고 올라가’라는 말을 해줘 늘 이 말을 신념처럼 머리에 새긴다. 내가 관객을 만나 얼마나 신나고 능력치가 올라가는지 잊지 않으려 한다. 관객이 배우로서 나를 성장시켰다.”(이)

“관객을 자유자재로 흔들며 판에서 소리하는 연희자로서의 이자람은 독보적이다. 소리만 레코드용으로 잘하는 게 아니다. 소리를 통해 관객한테 말과 감정을 정확히 전달한다. 자람의 ‘적벽가’ 완창 무대를 보았나. 관객들이 자지러진다.”(남)

―두 사람이 만든 단체 ‘판소리만들기 자’는 판소리 현대화 작업의 기지인 셈이다. 작업의 의미는.

“우리 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은 판소리의 스토리텔링과 동시대성이다. 대본 외우고, 판소리 사사받듯이 음 외우는 것은 안 되고 왜 그걸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남)

“의도적으로 서편제의 무슨 제를 알리고 싶어서 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남 연출의 말대로 ‘홍대에서 기타 메고 다니는 이자람도, 인간문화재 집 문을 열고 나오는 이자람도 이 시대를 사는 이자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하면서 살면, 내가 하는 판소리도 밴드음악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자유로워졌다.”(이)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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