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절집에서 구전되는 이 이야기속의 한없이 깊은 해우소와 엄청나게 큰 죽솥은 지금도 남아있을까? 필자가 수행생활을 하던 40여년전 해인사 후원에서는 사시사철 물소리가 우렁찼다. 가야산 중턱의 맑고 시린 계곡물을 받아서 물을 내렸는데 주변에 흔한 참나무 둥치를 반으로 잘라 고랑을 만들고 이를 이어서 물길을 내었다. 늦은 가을 낙엽이 지고나면 통나무 수로에 쌓인 낙엽을 걷어 내느라 대중스님들이 한바탕 울력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해인사의 밥 짓는 풍경도 실로 장관이었는데 기거하는 스님이 많을 때는 한 끼 밥을 짓기 위해 한가마니 이상의 쌀이 들었다. 쌀의 양이 많다보니 드럼통을 반으로 쪼갠 정도로 큰 함지에 물과 쌀을 담고 노처럼 생긴 막대로 저어가며 씻어야 했다. 밥을 지을 때는 어마어마하게 큰 솥에 쌀을 앉힌 후 지게에 장작을 가득 지고 아궁이로 내려가 우물정자(井)형으로 장작을 얼기설기 재우고 간솔로 불을 지펴 밥을 하는데 솥안의 밥물이 한소끔 끓고 나면 타다남은 장작을 아궁이 밖으로 꺼내어 물로 불을 끄고, 나머지 잉걸불을 삽으로 떠서 솥뚜껑 위에 부어서 뜸이 고루 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러한 공양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편리한 가스불에 의존하는 증기솥으로 밥을 짓고 네모난 식판에다 공양을 한다고 한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수백년을 이어오던 전통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다른 곳에 편리한 시설을 마련할 수는 없었을까? 해인사의 터가 좁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린 나이에 입산을 했던 필자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사찰에서의 설 새기는 본격적인 음식 장만이 이루어지는 보름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유과. 부각. 강정. 엿, 전과. 약과 등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음식 장만을 시작으로 설 3일전부터는 떡과 나물, 부침개, 두부 등을 만들었다. 이렇게 시간과 정성, 품이 많이 드는 유과, 전과, 약과, 강정 등의 귀한 음식은 평소 사찰에 많은 공을 세운 분들에게 정성껏 싸서 명절 선물로 보내드리기도 하였다. 지금에 이르러 유과. 부각. 강정. 엿. 전과, 약과 등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직접 장만하는 사찰이 전국에 걸쳐 과연 몇이나 될까?
예전에는 전국의 24교구 본사마다 대를 이어 전해지던 특별한 사찰음식들이 한 둘씩은 꼭 있었다. 예를 들면 합천 해인사의 상추불뚝전과 산동백튀각, 한해물김치, 구례 화엄사의 상수리잎쌈밥, 죽순채볶음, 아카시아꽃튀각, 참죽전, 동래 범어사의 흰죽과 감, 다시마 등 각종 장아찌, 옥잠화튀김 등이 유명하였다. 그런데 약 40여년전부터 이러한 전래 사찰음식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어느 절에서도 그 명맥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빠른 시간에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 등의 인스턴트 간편조리식품이 등장하고, 숯과 먹으로 염색을 하고 풀을 먹일 필요가 없는 저렴한 화학섬유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떡과 두부, 한과 등의 전통식품이 공장에서 손쉽게 만들어지는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사찰에서의 행자생활이 짧아져 고유의 음식을 만드는 법을 제대로 전수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사찰음식이 처한 현주소는 “사찰에 사찰음식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사찰음식의 보존에 대한 대중스님들의 관심이 부족하고, 자신의 절에서 사라져 버린 고유의 사찰음식을 애써 되찾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절음식이 지켜야 할 몇 가지 금기사항만 지키면서 공장에서 생산된 규격화된 식재료와 현대적인 부엌설비가 제공하는 편리함을 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4대 사찰에서까지 네모난 식판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바루공양의 전통도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우려가 과하지 않은 것이 이미 수많은 사찰에서 공양주를 구할 수 없어 중국동포 등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스님들의 공양을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사찰에 사찰음식이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사찰음식의 대중화와 세계화’란 구호는 실로 공허한 메아리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사찰음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배경으로 스스로 사찰음식의 대가를 칭하며 등장한 몇몇 스님들이 대중에게 소개하고, 가르치는 음식들이 도대체 우리나라의 어느 절에서 보편적으로 해먹었던 전통음식들인가? 사찰음식의 정신적 가치를 간과한 채 피자나 탕수육, 초밥 등 현재의 세속음식을 흉내 내어 갖가지 재료에 화려한 색으로 물들이고 보기에 좋게 만들어낸 그들만의 뿌리를 알 수 없는 음식을 과연 전통 사찰음식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필자는 어린 시절에 입산하여 점차 사라져 가는 사찰음식의 가치를 깨닫고 북한을 포함한 전국의 사찰을 돌며 모든 대중스님들이 마다하는 고단한 절살림을 기꺼이 살아주면서 사찰음식을 하나하나 채록하여 책으로 정리한 바 있다. 최근 일부에서 본인의 사찰음식에 관한 기록을 흉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갖 해괴망칙하기까지 한 근본 없는 음식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전통사찰음식이라 호도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이 사찰음식의 정신을 되새기며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아울러 사찰음식 보존과 대중화, 세계화의 첫걸음은 사찰에서 제대로 된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이미 사라져 버린 각 절의 전래 사찰음식을 복원하고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정산 김연식 동산불교대학 사찰음식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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