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만들어진 승리자들
“명성의 대부분은 그 인간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통해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명성은 어차피 로토와 다름없다면 우리는 새롭고 독자적인 평가로 역사가와 비평가, 편찬자들의 작위적이고 우연한 결정을 깨부수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이 책은 백과사전식의 천편일률적인 위인과 천재의 평가를 거부한다. 이른바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은 작위적이고 각색된 인물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독일 유력 일간지 ‘디벨트’ 편집책임자를 지낸 이력답게 역사의 인물들을 균형 있게 분석했다. “그렇다고 종래의 위인들을 흠집 내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세간의 평가를 무작정 따르는 태도를 비판하고, 동시에 때와 기회를 얻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수한 나폴레옹과 모차르트에게 애정 어린 헌사를 보낸다.”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을유문화사/2만3000원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인물은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누구도 쉽게 지닐 수 없었던 모험정신과 도전정신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대단히 주관적이라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콜럼버스가 당시 열강의 제국주의 야욕에 부추김받았다는 점을 제외하고라도, 그의 업적에는 많은 논란이 뒤따랐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대륙 발견을 부인했다. 콜럼버스 이전의 탐험가들이 두 차례나 신대륙을 발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후세 사가들은 콜럼버스에게 모든 업적을 덧씌웠다. 이 부분은 편찬자들의 판단 미숙이거나, 당시 권력자들의 부풀림에 의한 것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콜럼버스는 어쨌거나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였음은 분명하다.

 인류가 두고두고 기억하는 위인들 가운데는 환경과 우연과 운(運)의 결합으로 이뤄진 인물이 적지 않다. 저자는 “우리는 수많은 인물이 복잡하게 뒤엉킨 역사적 과정을 단순화해 누군가 한 사람에게 고착화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특히 그 사람이 승리와 비극, 비전과 어리석음, 천재성과 광기를 부지런히 오가는 인물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풀이한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단순화해 영웅으로 만드는 방법에 우리들은 매우 익숙해져 있다.

메릴린 먼로
저자는 “명성의 대부분은 그 인간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통해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화복과 부침을 통해 세인들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룬다. 단순화와 숭배가 그것이다”고 했다.

저자는 탐험가들 가운데 제임스 쿡을 따라갈 자가 없다고 했다. 그는 동시대의 어떤 인물보다도 더 많은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측량했다. 그는 지극히 냉철하고 합리적인 탐험가였다. 

그러나 쿡은 콜럼버스처럼 ‘화려한 공작과 날카로운 매와 도둑의 면모’를 갖고 있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나 프리드리히 왕 같은 인물도 깎아내린다. 저자는 “한 나라뿐 아니라 부왕의 완벽한 군대까지 물려받았다면 전쟁 영웅이 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라고 반문한다. 

메릴린 먼로와 그레타 가르보가 그렇게 유명한 인물이었던가. 섹스의 심벌 또는 대단한 미인이었기에 그랬던가. 저자는 “얼굴 미모 이외에는 별로 갖춘 것도 없다. 성형술과 화장술의 가장 적절한 수혜자였을 뿐”이라는 인색한 평가를 한다.

그레타 가르보
저자는 명성 뒤에 가려진 인물들의 이중성도 지적한다. 에디슨의 발명품으로 알려진 전구는 에디슨이 만들어내기 25년 전 이미 세상에 나온 바 있다. 2차 대전을 승리를 이끈 윈스턴 처칠은 사실 지독한 전쟁 애호가였다. 

공산당 선언을 기초한 카를 마르크스는 주변 사람들의 돈을 마치 제 돈인 양 썼던 뻔뻔한 삶을 살았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벌었다.

위인들 가운데에는 상궤를 벗어난 인물도 적지 않다. 토마스 만은 괴테와 함께 독일어를 완성시킨 인물로 추앙받은 철학자다. 그는 정신병원으로 가기 직전에 팔꿈치로 피아노를 치고, 방문객들 앞에서 알몸으로 춤추었다. 한때 니체의 화신이라고 불렸던 철학자의 미치광이 모습에 사람들은 아연실색하곤 했다. 베토벤의 실제 모습은 더욱 당혹스럽다. 베토벤은 하인을 때리고 식당 종업원의 얼굴에 음식을 집어던졌다. 자신의 악보에 불평을 털어놓는 음악가에게는 “한심한 친구”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에게는 음악의 신이 내렸다고 우쭐댔다.

전략 전술에 능했던 로마의 명장 카이사르의 경우도 실소를 자아낸다. 기원전 47년경 원정 길에서 아프리카 땅에 내렸을 때 카이사르는 실수로 발이 꼬여 땅바닥에 쓰러졌다. 순간 그는 잔머리를 굴렸다. 부하들이 자신의 모습을 나쁜 징조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나머지, 넘어진 채로 흙을 움켜쥐고 일어나서는 소리쳤다. “아프리카, 내가 드디어 너를 붙잡았노라!”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 @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
  • 블랙핑크 로제 '여신의 볼하트'
  • 루셈블 현진 '강렬한 카리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