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조차 가깝게 한 상처를 담은 자전적 성장소설 ‘하늘까지 75센티미터’(도서출판 아시아)를 들고 온 척수장애인 안학수(57·사진) 시인의 얘기다. 1993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돼 등단한 이후 ‘박하사탕 한 봉지’ ‘낙지네 개흙 잔치’ ‘부슬비 내리던 장날’ 등의 동시집을 발표한 시인의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하반신이 마비돼 2년간 방 안에서만 지냈던 기억, 가난으로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아픔, ‘꼽추’라고 놀림당하던 어린 시절 상처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는 아이가 없었다. ‘야, 꼽새’ 하고, 만만한 심심풀이 놀잇감으로 여겨 주먹질이었다. 아무 까닭 없이 갑자기 눈에서 불 나도록 뒤통수를 때리는 아이도 있었다.”(150쪽)
말하지 못한 비밀도 털어놓는다. 지금까지 누나와 놀러 나갔다가 비탈에서 굴러 다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이웃집 형에게 발길질을 당해 토방 아래로 나뒹군 후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을 밝힌다.
소설은 아픔만을 담고 있진 않다. 고통 끝에 두 발로 서고 다시 걷게 된 얘기,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 소설가 이문구씨와의 인연으로 시인이 되기까지의 얘기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제목에 75센티미터가 들어간 이유다. 그는 “먼 하늘이 아닌 팔길이 75㎝, 팔을 뻗어 닿을 만한 곳에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금세공 일을 배워 금은방을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2000년 가게를 접고 전업작가로 들어섰다. 충남 보령에서 시인 유용주와 이정록, 소설가 한창훈 등과 함께 구월산 꺽정이패처럼 한 묶음 돼 사는 모습이 정겹다.
김용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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