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주목, 이사람] 떠오르는 ‘만담 콤비’ 장광팔·안춘자

입력 : 2011-01-19 10:43:03 수정 : 2011-01-19 10:43:0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가슴 찡하게∼ 징하게 한번 웃어보실래요?
이름부터 운명적이다. 안춘자(43·본명 안숙희)씨는 KBS 2TV ‘한바탕 웃음으로’의 한 코너였던 원조 ‘봉숭아학당’에서 맹구와 함께 춘자 역할로 나왔던 바로 그 사람이다. ‘장에서 광팔다 나왔다’는 장광팔(58·본명 장광혁)씨는 2002년 작고한 추억의 만담가 장소팔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실제 장소팔씨의 둘째 아들이다. 장소팔·고춘자(1995년 작고) 콤비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이들을 이은 장광팔·안춘자 콤비가 ‘만담 부활’을 선언하고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1960∼70년대 어렵던 시절 서민에게 웃음을 준 장소팔·고춘자 콤비는 단연 최고의 스타였다. 하지만 70년대 TV의 등장과 함께 코미디계의 주류가 만담식에서 꽁트식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개그콘서트’, ‘웃찾사’와 같은 즉석 무대 개그가 코미디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만담의 명맥은 끊기다시피 했다.

7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 가운데 ‘장소팔·고춘자식 개그’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는 봤어도 실제 이들의 만담을 접해본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다. 이제 그들은 ‘전설 속의 스타’가 되어버렸지만 지금도 당시 만담을 담은 LP판이 고가에 거래될 정도로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

장씨는 “만담이 사라지게 된 것은 TV시대로 접어드는 것과 동시에 스타가 더 이상 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스타 부재 시대’에 만담을 하신 분들은 선친이 했던 것을 그대로 흉내만 냈고, 사람들에게 만담이 서서히 잊혀졌다”고 말했다.

그가 만담가로 변신한 것은 선친의 영향도 있지만, 사실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됐다. 법률신문사 출판사업단 대표, 유머 컨설턴트, 공연예술 감독 등 다양한 일을 하던 그는 2009년 교통사고로 3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했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따라오는 법.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유머집 ‘20초에 사로잡아라’를 썼는데, 이를 본 박일훈 국립국악원장이 그해 추석 특별행사에서 만담식으로 진행해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문제는 함께 만담을 진행할 파트너였다. 수소문 끝에 KBS 공채 개그우먼 출신의 안씨를 찾았다. 안씨 역시 요즘의 즉석 개그에 염증을 느끼던 터였다. 그는 선·후배가 함께 아이디어를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느리지만 차곡차곡 연기력을 쌓아가던 시절이 그리웠다.

얼떨결에 이들의 데뷔 무대가 된 국립국악원 ‘아시아 한가위 축제’는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내·외국인 1700명이 모인 대형 무대에서 ‘콩글리시’까지 섞어 주거니 받거니 펼친 만담은 관객을 들었다 놨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연이어 들어왔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관객을 상대해본 결과 생각보다 훨씬 큰 호응을 받았다. 최근에는 서울 대학로 연극 무대에 게스트로 출연해 ‘장광팔, 안춘자입니다’라고 소개만 했는데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씨는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카메라맨 등 스태프진이 웃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았다”며 “‘선수’는 ‘선수’가 알아본다고, 비슷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와서 재미있었다고 말 건넬 때 ‘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각자 따로 대본을 쓰고 합쳐 연습해 봐도 죽이 척척 맞는 경지에 이르렀다. 눈빛만 봐도 이해한다는 것이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만담은 말만 잘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냥 외워서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면서 대사를 말해야 관객이 웃습니다. 기계적으로 대사를 외워서 말하면 아무도 안 웃어요. 만담도 결국 연기력으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는 의미예요. 제가 ‘안춘자’라는 캐릭터 그 자체가 돼야 하는 거죠. 오랫동안 방송을 거의 쉬었지만 꾸준히 행사 MC, 리포터 등으로 활동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안씨)

주로 세상을 풍자하는 소재를 가지고 청중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만담이다. 전문가들은 만담의 뿌리를 조선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재담에서 찾는다. 즉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한국 만담의 원류가 일본은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만담은 거의 사라졌지만, 일본의 만담인 만자이(慢才)는 아직도 인기가 건재하다. 북한에서는 상당 기간 만담이 이어졌고, 중국 옌볜에도 아직 한국의 만담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부분이다.

장씨는 “만담은 ‘그냥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상을 비유하며 생활의 지혜와 유머가 섞여있는 것”이라며 “선친의 ‘팔도강산유람’이라는 만담을 들어보면 지역 특산물을 언급하고 있고, ‘노랭이 영감’에는 절약정신을 담고 있는 등 철학과 스토리 텔링이 있다”고 말했다.

◇장소팔·고춘자 콤비의 계보를 잇는 장광팔·안춘자 콤비는 “만담을 통해 격이 있고 깊이 있는 웃음을 선사하겠다”고 말한다.
남제현 기자
이들이 만담을 되살리려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만담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추억 장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시대의 새로운 옷을 입은 만담을 통해 찡하게 여운이 남는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남들 웃기는 것은 좋은데 격이 없습니다. 이왕이면 웃기면서도 생활의 지혜, 조상의 지혜를 담고, 철학이 묻어나는 유머를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오락프로그램은 대부분 10대 후반∼20대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40대 중반 이후는 TV에서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그분들에게도 시청권이 있는데 너무 간과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은 5초 안에 빨리 유행어를 터뜨린다거나 ‘몸 개그’를 한다든가 하지 않으면 편집돼버리는 상황이죠.”(장씨)

만담의 순기능은 또 있다. 인터넷 용어와 정체 불명의 외래어가 판치면서 표준어가 위협받는 요즘, 표준어로 진행되는 만담은 우리말을 정확히 알리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씨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의 만담을 쭉 들어보면 서울말이 살아 있다”며 “그 당시 사용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말도 다 들어 있어 그야말로 표준말의 보고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씨는 표준말로 겨루는 만담 경연대회를 준비 중이다. 만담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후진을 발굴해 만담을 잇겠다는 목적도 있다.

생활인지 연기인지 헷갈릴 정도로 만담을 몸으로 익힌 두 사람. 만담을 통한 건강한 웃음을 꿈꾸는 이들 콤비가 마지막으로 “즐겁게 살자”며 속사포처럼 주고받는다.

“영국 통계로 인간의 수명이 80년이라면, 잠자는 데 28년, 일하는 데 25년, 화장실 가는 데 1년 반, 심각하거나 화내는 데 8년. 그러나 웃는 데 보내는 시간은∼ 불과 15일이라고 합니다.”(안씨)

“불과 15일?”(장씨)

“예, 그러니까 웃으면서 살아야죠!”(안씨)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