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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양식은 얼마든지 진화 가능성
8편의 단편서 다양하게 실험 입증
이야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비틀어지며 부서지고 새로 생겨나는가. 인간들의 심층은 얼마나 천변만화 깊은 단층인가. 소설이라는 양식은 얼마든지 새롭게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과연, 지니고 있는가.

2007년 문학과지성사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온 지 3년 만에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을 펴낸 신예 최제훈(37·사진)이 이 책에 수록한 8편의 단편에서 다양하게 실험하고 던지는 질문들이다.

표제작은 어린아이들을 잡아먹고 젊음을 유지한다는 오래된 이야기 속 퀴르발 남작을 둘러싸고 시간과 공간을 뒤섞어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들을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1951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자와 감독이 이 작품을 놓고 나누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2000년 한국 인천 M대학교 인문학도의 리포트가 등장하고 19세기 말 원작자의 할머니 이야기로 거꾸로 들어갔다가 2005년 MBC 뉴스데스크나 2006년 네이버 블로그에 컬트소녀가 쓴 영화에세이를 인용하는 형식이다.

일견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이야기라는 게 어떻게 필요에 따라 변형되고 이용당하며 새로운 의미로까지 거듭나는 것인지 흥미롭게 반추하게 된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도 이야기의 운명을 천착하기는 마찬가지다. 셜록 홈즈를 만들어낸 작가 코넌 도일이 아무도 들어온 흔적이 없는 방 안에서 감쪽같이 살해당해 책상에 엎드린 채 피를 흘리고 죽어 있다는 설정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소설 속의 주인공 홈즈가 자신을 지어낸 ‘조물주’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오히려 작가 자신보다 한갓 자신이 지어낸 인물일 따름인 탐정 홈즈의 실존이 더 강력하게 느껴질 때, 작가는 자신의 실존 전부를 걸고 작중인물과 한판 대결을 벌인 것으로 최제훈은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 단편은 홈즈가 조수 왓슨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기술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 호소하는 범죄자의 독백체로 그려낸 ‘그림자 박제’는 진부한 구성을 싫어하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그리 참신할 것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망각하는 등장인물의 복잡한 심층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어느 인간들에게나 잠재해 있을 것 같은 ‘다중인격’의 무의식을 섬뜩하게 들추어낸다.

이 소설집에는 이 밖에도 ‘그녀의 매듭’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관한 고찰’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괴물을 위한 변명’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 등이 실렸다. 평론가 우찬제씨는 말미에 붙인 해설에서 “현실과 문화 양쪽에 동시다발적으로 구멍을 내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유머러스하게 길어 올린다”면서 “그러면서도 매우 치밀한 논증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제훈의 소설은 21세기 소설의 새로운 출구를 예감케 한다”고 상찬했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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