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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의 눈으로 본 시린 삶의 편린들

입력 : 2010-08-30 22:40:10 수정 : 2010-08-30 22: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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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시집 ‘지도에 없는 집’ 곽효환(43·사진) 시인의 정서를 북방으로 잡아끄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의 두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집’(문학과지성사)에는 몽골과 북만주와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그마저 지루해지면 사막으로 들어서고, 멕시코의 고대 유적지로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시인의 정서를 장악한 깊은 뿌리를 제대로 만지려면 지금 이곳, 그리고 추억에서 길어올린 시편들과 먼저 눈을 맞추어야 한다.

“인적 드문 외진 공터에 겨울비는 내리고/ 대형천막 가설무대, 국내 최고이자 유일한 서커스단의 세계적인 묘기는/ 이렇게 환상적이고 아슬아슬하게 시작되지 매일// (…)// 그다음엔 몰라/ 곡예사에게 내일 일은 모르는 거야/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 스무 살/ 사랑, 아니 필요할지도 모르지// 삶도 겨울들판처럼 비워둘 수 있으면 좋겠어/ 낡고 초라하게 시드는 꽃도 나름 아름답잖아/ 떠돌면서 날마다 피고 지는 꽃/ 하루의 꽃”(‘세기의 서커스’ 부분)

지금 이곳, 여기의 삶이 숨막히고 답답할수록 겨울 들판의 쓸쓸한 여백과 찰나의 아름다움에 더 끌릴 수밖에 없을 테다. 서커스단이라는 소재 또한 북방의 삶은 아니지만 일상과는 떨어진 속성을 지니다 보니, 시인의 속마음을 살피기 위해선 지금 이곳에 대한 관찰이 더 필요하다.

“더듬이를 있는 대로 늘어뜨린/ 등 굽은 은백의 달팽이 한 마리/ (…)/ ㄱ자로 허리를 꺾은 노파가 사력을 대해 끄는/ 폐지 더미를 가득 실은 손수레/ (…)/ 그네는 안다, 속도와 풍경을 압도하는/ 느림과 멈춤의 힘을”(‘달팽이’ 부분)

도로를 가로지르며 수레를 끄는 늙은 노파, 달팽이. 이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연민으로 가득하다. 따지고 보면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힘도 바로 이 연민에서 발원하는지도 모른다.

“지도에 없는 길 하나를 만났다/ 엉엉 울며 치미는 눈물을 삼키고 도시로 떠난/ 지나간 사람들의 그림자 가득해/ 이제는 하루 종일 오는 이도 가는 이도 드문/ 한때는 차부였을지도 모를 빈 버스 정류소// …// 지도에도 없는 길이 끝나는 그곳에/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집 한 채 온전히 짓고 돌아왔다”(‘지도에 없는 집’ 부분)

그가 지도에도 없는 길 끝에 짓고 온 먼 북방의 집이란 지난 세월 고단하고 아팠던 이들에 대한 추모의 공간이자, 시인 자신을 지금 이곳에 굳건하게 뿌리내리기 위한 연민의 집인 것이다.

곽효환의 시들은 대체로 서사적인 가독성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사람 이야기에 이르면 빛을 발한다. 그중에서도 폐암 선고를 받고 삶을 정리하던 이청준 선생과의 만남을 기록한 시편 한 토막은 많이 아프다.

“그날 이후/ 몇 번을 망설이다 그의 집을 찾았다/ 초여름, 남색 털모자를 반듯이 눌러쓴 그는/ 이제 약을 끊었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평생 거짓 이야기로 세상을 현혹한 죄와 벌에 순응키로 했다고// …// 요즈음은 헤어지는 일을 한다고 했다/ 누구를 만나든/ 내 마음에서 그를, 그 마음에서 나를 지우는/ 상처 없이 그러나 단호하게”(‘아직 연습이 필요하다-이청준 선생께’ 부분)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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