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 없이 시종 유쾌함
이윤학 지음/전종문 그림/주니어랜덤/9800원 |
‘왜 이러지 한 번도 말이 막힌 적이 없는데….’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이 “책 안 읽고 뭐 하냐”고 소리를 높였다. 식인종이 이형진의 어깨에 올라타 다리로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이 다가와 왜 그러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말을 더듬게 되다니…. 경민이를 놀린 죗값을 받는 거래도 이건 너무했다. 나만 놀린 것도 아닌데, 정말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일 후로 형진이는 사람들과 말할 때도 자꾸만 말문이 막혔다.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아 눈길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괜히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장편동화 ‘왕따’와 ‘샘 괴롭히기 대작전’을 통해 왕따를 당하는 아이와 왕따를 시키는 아이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세세하게 그려냈던 이윤학 시인이 이번엔 ‘나는 말 더듬이예요’을 통해 ‘왕따 문제’를 다시 한 번 정면으로 다뤘다.
그 무렵, 형진의 집에 말라깽이 아저씨가 세입자로 들어온다. 형진은 처음에 말라깽이 아저씨를 ‘재수 없어’ 하지만, 차츰 그의 친구가 되어 함께 새벽 달리기를 한다. 그러는 한편, 형진은 경민과 힘을 합쳐 만든 만화를 블로그에 연재한다. 새벽 달리기를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해가는 형진과 경민은 아옹다옹하면서도 우정을 쌓아간다.
동화는 시종일관 유쾌함을 동반한다. 왕따 문제를 다루면서도 우울한 장면을 그리지 않는다. 말더듬으로 인해 빚어지는 창피하고 위태로운 순간들이 오히려 코믹하게 다가온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들려주는 문장과 말투 역시 무언가가 항상 불만이고 세상을 자기식으로 해석해버리는 딱 그 또래 아이들의 화법을 그대로 닮았다. 훈훈한 성장 드라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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