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가슴저린 아픈 사랑…이 또한 지나가리라

입력 : 2010-07-09 22:55:35 수정 : 2010-07-09 22:55:3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정길연 새 장편소설 ‘백야의 연인’ 정길연(49·사진)씨의 새 장편소설 ‘백야의 연인’(랜덤하우스)은 운명에 휘둘리는 인간들의 아픈 절규로 가득하다. 태생 자체의 불온한 운명과, 사랑조차 제대로 지켜낼 수 없는 이들의 사연이 러시아의 이국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도도하게 흘러간다.

장도수라는 늙은 사내. 그는 월남한 이북 출신으로 남쪽에서 사랑을 나눈 적도 있지만 대한민국 육군 장교 신분으로 냉전시대에 소련으로 망명,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쓸쓸한 삶을 이어온 인물이다. 그가 남쪽에서 맺었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수완. 그는 얼굴조차 모르는 아비가 장도수일 것으로 막연히 예감한 상태에서 러시아로 날아가 자신의 망명 스토리를 논픽션으로 발표했던 그이를 만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장도수와 수완 사이의 심부름꾼으로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 스베틀라나. 수완은 그녀와 깊은 사랑에 빠져들지만 한국에는 그를 기다리는 다현이라는 정혼자가 있다. 그 여자 다현, 돈 많은 아버지가 자신의 회사 엘리베이터 걸과 동침해 낳은 딸이다. 생모는 일찌감치 다른 남자 만나서 결혼해버렸고, 그 여자만 아버지 집에서 무관심과 냉대의 환경 속에서 살았다. 이 태생적으로 고독한 여인이 애인에게서마저 버림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그녀는 러시아까지 직접 날아가지만 얻은 것이라곤 다른 남자와 동침하면서 수완에게 복수하는, 쓸쓸한 자유의 역설뿐이다. 

수완의 여동생 수명. 어린 시절 부모가 한날한시에 교통사고로 사라진 것을 빼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행복한 편인 그녀마저 아이를 낳다가 절명하고 만다. 수완이 끔찍이 아꼈던 그녀이고 보면, 게다가 스베틀라나와도 맺어지지 못한 상황이고 보면, 여동생 수명의 죽음 앞에서 모든 희망을 놓아버린 그이고 보면, 수완에게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출구가 없는 상황이다. 장도수, 그는 실패한 망명객으로 남쪽에서 맺었던 마음의 연인을 평생 잊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슬픔의 허공’에서 부유하는 인물이다. 돌아온 남자 수완 곁에 머물기는 하지만 마음은 애증의 사막에 머무는 다현이나, 죽은 수명의 남편 우재 또한 절망의 나락에서 어둠 속을 헤매기는 마찬가지다. 자, 이제 이들은 남은 이승의 시간들을 어찌 보내야 하는 걸까. 작가는 수완의 독백을 빌려 충고하면서 동시에 다짐한다.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놀라움도, 뼛속 깊이 아로새긴 증오도, 내려놓지 못할 것 같던 그리움도 지나가리라.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 속에서 소멸하리라. … 두려움이, 미움이, 간절함이 지나가지 않으면, 내가 지나가리라고. 결코 뒤돌아보는 법 없이 나아가고, 나아가고, 나아가서 끝끝내 땅에 가슴을 대고 고꾸라지리라고.”(298쪽)

정길연씨는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건 어느 망명객의 수기 때문이었다”면서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주변 인물과 에피소드는 모두 허구”라고 밝혔다.

조용호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