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다채로운 인생살이 밀도 높게 보여주는 ‘인생총서’

입력 : 2010-04-11 17:26:36 수정 : 2010-04-11 17:26:3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유씨삼대록/한길연·김지영·정언학 역주/소명출판/10만8000원 “과장되지 않은 실제 삶의 품격 높은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 작품”

 ‘유씨삼대록’ 일찍이 ‘열하일기’에 소개되었듯 18세기 초반에 창작되어 널리 향유된 국문장편소설이다. ‘유효공선행록’의 후편으로서 연작형 삼대록계 국문장편소설의 선편을 잡은 이 작품은 삼대록계 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으면서 상층 중심의 품격 높은 취향을 잘 보여준다.

 ‘유씨삼대록’은 유씨 가문 주요인물들의 이야기가 3대에 걸쳐 유장하게 펼쳐진다. ‘유씨삼대록’ 안에서 1세대라 할 수 있는 유백경·유우성 형제에 관한 이야기, 2세대인 유세기·유세형 형제 등에 관한 이야기, 3세대인 유관·유현 형제 등에 관한 이야기가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변주를 보이면서 전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자 돌림 항렬인 유세기 유세형 유세창 유세경 유세필 그리고 설영 현영 옥영 등의 부부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펼쳐진다.

 정인군자와 요조숙녀가 만나 별 갈등 없이 잘 살아가는 부부, 미리 약혼한 정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마로 간택되어 공주와 혼인하게 됨으로써 숱한 갈등을 겪는 부부, 요조숙녀인 아내보다 뒤늦게 만난 활달한 여협(女俠)의 아내를 사모함으로써 갈등을 겪게 되는 부부, 서로 간에 별다른 결함이 없는데도 성격이 맞지 않아 갈등을 겪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화합하는 부부, 시계조모(媤繼祖母)로 인해 정실 자리를 빼앗기기까지 하며 온갖 구박을 받다가 시계조모를 감화시킴으로써 비로소 함께할 수 있는 부부, 호탕한 성품의 남편이 강렬한 성품의 아내의 기를 꺾으려고 온갖 구박을 하다가 아내가 죽을 고비를 겪고서야 화합하는 부부 등 다양한 혼사장애담이 펼쳐진다.

 이는 ‘유씨삼대록’이 가문의 창달과 번영에 관한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고 인생살이의 다채로운 모습을 밀도 높게 보여줌으로써 ‘인생총서’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타의 국문장편소설에서 주요인물들이 수복을 누리는 것과는 달리 ‘유씨삼대록’에서는 주요 인물들이 요절하는 양상을 통해 죽음에 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유씨삼대록’을 ‘진양공주전’이라 평가하기도 할 만큼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씨 가문을 수호하면서 가장 전인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진양공주가 25세에 요절하며, 남성인물들 중 가장 비중 있게 그려지는 인물인 진양공주의 남편 유세형이 48세에 요절하는 등 가문구성원들의 때 이른 죽음이 집중적으로 부각된다.

 이밖에도 여타의 국문장편소설에서 대개 80세를 향유한 뒤 저 세상으로 가는 주요인물들과는 달리, 40~60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가문구성원들에 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비중 있게 서술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상적인 죽음의 모습들이 곡진하게 형상화된다. 임종을 목전에 두고 죽어가는 자는 집안의 후원에서 가족들과 담담하게 시를 주고받으며 영원한 이별을 나누지만 다른 가족들은 슬픔을 이길 수 없어 뒤돌아서서 처절히 눈물을 흘리는 대목, 가족들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죽어가는 부모형제의 입에 넣고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기를 간절히 빌지만 결국 부모형제는 죽어갈 수밖에 없는 대목, 가족들이 죽어갈 부모형제 앞에서 낮에는 억지로 웃음을 짓지만 밤에는 그 옆에 번갈아가며 잠을 자면서 남몰래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 등 죽음과 관련한 사소한 일상들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한길연 서울대 국문학과 강의교수, 김지영 서강대 강사, 정언학 홍익대 강사가 역주에 참여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