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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과 한권의 책] 발상의 전환이 만드는 따듯한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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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3-12 18:11:07 수정 : 2010-03-12 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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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노보들 ―자본주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안치용 외 지음/부키/14000원

정광준 부키 편집장
“요 앞에 천 원짜리 식당이 생겼대.”

가격이 참 착하다. 김밥전문점 김밥 한 줄도 천 원이 넘는데. 순전히 가격 때문에 직장동료를 따라나섰다. 간판이 ‘문턱 없는 밥집’이다. 들어가 보니 무조건 천 원이 아니라 자율요금이다. 얼마를 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2000원을 냈다. 보리밥과 열무김치, 된장 등을 손수 그릇에 담아 비벼 먹고 남은 음식은 물로 부시어 마신다. 맛도 방식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 뒤로 이 식당에 못 가봤다. 조미료에 미각을 점령당한 동료들은 유기농 비빔밥이 입에 안 맞고, 고춧가루나 밥알 하나까지 일일이 부시어 먹는 것도 싫다고 했다.

이제는 꽤 유명해진 존 우드라는 사람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원으로 잘나가던 그는 히말라야 트래킹 중 우연히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룸투리드(Room to Read)재단을 차린 그는 10년이 채 되지 않아 지구촌 빈민 지역에 150만권의 책을 기증했고 3000개가 넘는 도서관, 200개 이상의 학교를 지었다. 2018년까지 빌 클린턴 재단과 도서관 2만개를 지을 계획이다. 정말 가슴 뜨거워지는 이야기다.

여기서 문제 하나. 룸투리드와 문턱 없는 밥집의 공통점은? 뭔지 안다면 당신은 이미 이 분야 전문가 수준. 정답은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룸투리드를 사회적기업으로 먼저 알았기에 사회적기업이라 하면 거창하고 굉장히 멋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문턱 없는 밥집처럼 우리 곁에서 조용히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어느새 250개가 넘는다고 한다.

문턱 없는 밥집은 민족의학연구원에서 차렸다. 연구원은 민족의학, 유기농 식사, 착한 소비가 생명을 되살린다며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 밥값이 그렇게 싼 것은 가난한 이웃에게 유기농 식사를 제공하려는 까닭에서다. 유기농이라 원래 한 그릇에 드는 비용은 5000원에 가깝지만 사람들에게는 ‘천 원짜리 식사’로만 알려졌다. 가격을 올릴 만도 한데 오히려 원가를 설명하는 표지판마저 떼어버렸다고 한다. 제값 내고 먹으라는 무언의 강요처럼 비칠까 봐서다.

‘한국의 보노보들’에는 이처럼 ‘착한 기업’ 36곳이 등장한다. 규모도, 분야도, 발상도 다양하다. 청주의 한 음식물쓰레기 수거업체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벌인다. 쓰레기양이 많을수록 수익이 늘지만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적기업이기 때문이다. 전주의 전통문화사랑모임은 주민 스스로 전통문화를 자원 삼아 지역 발전을 꾀한다. 국악과 양약을 크로스오버한 연주단, 전통술 박물관, 할머니 공방을 운영한다. 우리 콩으로 두부를 만들던 시민단체는 비지로 햄버거를 만들다가 호응이 좋아 아예 패스트푸드 버거에 도전하는 친환경버거를 만든다. 씨토크 커뮤니케이션은 청각장애인에게 영상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씨토크 전화기로 수화통역센터에 전화를 걸면 통역사의 도움으로 피자도 배달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는 침팬지의 폭력과 탐욕이 이끄는 듯 보이지만 보노보의 나눔과 공감은 여전히 남아 있어 자본주의를 따듯하게 만든다. 이번 주 저녁약속은 문턱 없는 밥집에서 가져야겠다.

정광준 부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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