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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한림대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저주받은 자연에 맞선 ‘신토(神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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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03 21:29:01 수정 : 2010-02-03 21: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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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홍수… 한발… 폭설… 버림받은 땅 사람들 기댈 곳은 '신사' 뿐 “까마득히 잊혀진 시절, 이젠 무의식만이 기억하는 시절, 은유는 사상이었고 상징은 현실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세계를 우리와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또 다르게 느꼈다. 그들에겐 바람에 이는 나뭇잎, 물결치는 보리 이삭마다 영혼이 깃들여 있고, 굴러다니는 돌멩이에도 숨이 붙어 있었다. 수풀과 호수마다 정령이 살았고, 대지는 어머니였다…. 그들이 소망을 이루는 방식은 주술이었다. 들소를 잡고 싶으면 들소 그림에 창을 꽂았고, 비를 내리고 싶으면 연기를 피워 올렸다.”(‘미학 오디세이’)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문이 ‘도리이(鳥居)’다. 신의 전령사인 닭이 머무는 곳으로 속세와 선계를 경계 짓는 역할을 한다. 사진은 도쿄 신주쿠(新宿)구에 위치한 쓰미토모(住友) 빌딩 정원에 세워진 신사와 도리이. 지나가던 한 여성이 하루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사람. 1000권도 팔기 힘든 전문서적 시장에서 무려 50만부를 판매하며 그 이름을 한국 미학사에 영원히 아로새긴 사람.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는 그렇게 마술이 예술이고 예술이 마술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시절부터 미학 여행을 떠난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오디세이의 출발점이 ‘태양’이요, 중간 기착지가 ‘지진’이라면, 최종 목적지는 바로 ‘신토(神道)’로 대표되는 토속 신앙이다. 극세, 극소 기술로 가장 정교하고 세밀한 물건을 만드는 데는 따라 올 경쟁자가 없는 나라. 인간처럼 자연스런 춤을 추는 로봇에서 로켓 발사,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 등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첨단 산업의 정점에 서 있는 나라. 그런 일본은 또한 10만여 개의 신사(神社)에서 800만명에 가까운 신들을 모시고 있는 ‘신들의 나라’이기도 하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오래도록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했던 일본인들은 백수(白壽)도 아닌 천수(天壽)에 대한 희망을 주고받았다. 사진은 신토 의식인 시치고산(七五三)에 따라 여자 어린이들이 7살 되는 해에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을 때, 사진관에서 내어주는 전통적인 사탕 주머니, ‘지토세아메’다.
간단히 말해, 신토는 어느 나라나 지니게 마련인 수많은 민간 신앙이 오늘날까지 종합적으로 이어져 온 일본판 제례의식 선물세트다. 해서,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고 기일(忌日)이면 제사를 올리는 한국인들의 전통이 지금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일본인들 역시 ‘묻지마’ 기도와 ‘눈도장’ 박수로 자신들의 참배를 신들로부터 다짐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기독교로 대변되는 세계 종교가 민간 신앙을 압도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민간 신앙이 기독교를 압도한다는 것뿐. 해서, 최첨단 건물 옆에 신사를 짓고 아침마다 이곳에 들러 합장하는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이해가 되지 않듯, 일본인 역시 교회가 거리를 뒤덮은 한반도에서 입시철이면 대학 정문들을 엿과 떡으로 도배하며 온갖 합격 상품을 주고받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교회와 절에서 하는 일들을 일본에서는 신사가 전문적으로 행해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네 목사님도 입시철이면 성령에 의지하는 기도를 해주시고, 인근 사찰의 주지스님도 염불을 외워주시지만, 일본에서는 그 모든 일들을 특화된 신들이 개별적으로 해결해 준다. 해서, 기독교도와 불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입시철과 신년, 결혼과 사업을 앞두고 점을 보러 가거나 사주, 궁합을 보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네 일상사처럼 일본인들 역시 출근길의 신사에 들러 손뼉을 치고 하루의 안녕을 기원하는 게 자연스런 나라다.

그런 일본의 신토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애니메이션 ‘파이널 판타지(Finial Fantasy)’. 지구상의 모든 사물에 생명과 혼이 깃들여 있으며, 죽는 것은 전부 영(靈)에 해당하는 신이 된다고 믿는 일본인들의 사상이 ‘파이널 판타지’에 집약적으로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당초, 게임으로 만들어졌지만 대박을 터뜨린 데 힘입어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 상영됐던 ‘파이널 판타지’는 파괴된 자연이 인간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 이상 개발할 자원조차 남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연기 같은 원령(怨靈)이 사람들을 흔적도 없이 연소시켜 버린다. 원령 덩어리는 점차 커지며 인류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지만, 실체가 없는 적에 대해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그런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방법이 바로 ‘가이아’로 표현되는 생명체 지구를 되살리는 것. 지구 전체가 숨을 쉬고 있는 생명체라는 이론에 따라 죽어가는 지구를 되살림으로써 결국 원령 덩어리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는 영화 줄거리는 기실, 불교와 도교적 가치관에 익숙한 우리들에겐 그다지 새로운 게 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신토 사상으로 무장한 ‘파이널 판타지’가 정작 흥행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는 것. 천문학적인 돈과 대대적인 광고비를 앞세우며 완벽에 가까운 실사(實寫)로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신토 사상에 공감하지 못한 미국 관객들과의 소통에 실패한 탓이다.

◇신토의 여러 의식 가운데 당신(堂神)으로 모시는 팽나무에 낫을 찍음으로써 불행 또는 질병과의 악연을 잘라 버리고자 것이 있다. 참고로, 팽나무는 한반도 남부와 제주도 등지에서 아직도 당신(마을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신목(神木)이다. 사진은 오오사카(大版) 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신토 관련 사료.
돌이켜 보면, 유일신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와 다신교의 최고봉인 신토는 애초부터 결합 자체가 불가능한 합성물이었다. 해서, 1억3000만 일본인 가운데 기독교도는 1%에 그치는 반면에 신토 신자는 아직까지 90%를 웃도는 게 열도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불교도 아니요, 유교도 아닌 신토가 일본에서 이토록 맹위를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험준한 능선과 깎아지른 듯한 준봉, 언제든지 불을 토할 준비가 돼 있는 화산과 지상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유황. 더욱이,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과 벼락, 홍수와 해일, 그리고 겨울의 한발과 냉대, 폭설과 눈사태는 하루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천행(天幸)인 이 나라 백성들의 숙명적인 무대 장치였다. 하지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요소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지진. 가장 굳건하고 단단하다고 믿었던 땅이 수시로 요동친다는 사실은 이 땅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저주,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면, 북유럽의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 온갖 종류의 게르만·바이킹 신화가 탄생한 것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거친 들판에서 살아온 인디언들이 수많은 애니미즘과 제례 의식을 공유해온 것처럼, 버림받은 땅에서 살아가야 했던 일본인은 무시무시한 자연을 신토 하나로 버텨내야 했다.

돌이켜 보면, 일제 강점기, 암울하고 기댈 곳 없던 조선 백성들에게 희망과 구원으로 대변되던 기독교는 어둠 속의 한 줄기 광명이었다. 때문에 기독교는 20세기 전반을 필두로 이 땅에서 급속도로 세를 불리며 신토적인 민간 신앙을 일거에 몰아내갔다. 결국, 해방 이후 들어서는 1500년 역사의 불교마저 2인자로 밀어내며 사실상의 제정일치 사회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게 이 땅의 기독교다. 종교를 중심으로 따져 볼 경우, 대한민국 건국 이후 9명의 대통령 가운데 무려 5명이 기독교인인 까닭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공산당이라는 정치 종교를 여태 고수하고 있는 중국이나 민간 신앙인 신토에 유달리 천착하는 일본의 종교적 행보는 동아시아 3국의 엇갈린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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