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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5세기 최고의 불교작품 단 한명이라도 읽는다면 보람”

입력 : 2010-01-20 02:03:07 수정 : 2010-01-20 0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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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일본어로 번역 출간 작업하는 가와세 유키오씨 한국문학사에서 한글로 쓰여진 첫 산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석보상절(釋譜詳節)’과 두 번째 운문 작품으로 여겨지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월인석보(月印釋譜)’가 처음으로 일본인 연구자의 손에 의해 일본어로 번역돼 올여름쯤 출간된다. 최근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요코하마(橫浜)시 가나자와(金澤)구 자택에서 번역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가와세 유키오(河瀨幸夫·65)씨를 만나 일본어역 출간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를 위해 집 현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기자에게 “당신의 이름은 기억하기 쉽군요”라는 말을 건넸다. “왜 그렇습니까”라는 물음에 “윤동주 시인과 이름이 같기 때문”이라고 답할 정도로 그는 한국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 30년간 한국어를 연마한 까닭이다.

◇가와세 유키오씨는 “‘석보상절’을 일본에 소개해 단 한 사람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삶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석보상절’과의 만남=‘석보상절’은 조선 세종28년(1446)에 죽은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아들인 수양대군 등이 왕명을 받아 1447년 완성한 석가의 일대기다. 한문본은 전해지지 않고 한글본만 남아 있다. 1970년 보물 제523호로 지정됐다. 전 24권 가운데 현재 10권이 남아 있다. 세종 29년 지어진 ‘월인천강지곡’은 상·중·하권 중 상권만이 전하며 보물 제398호로 지정돼 있다. 보물 제745호인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으로, 전 25권 가운데 20권이 존재한다.

가와세씨는 이 세 작품을 ‘석보상절’이라는 이름으로, 세 권(상·중·하)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출판사는 요코하마의 학술서적 전문 출판사인 슌푸샤(春風社)가 맡았고, 세 권 가운데 상권이 올여름쯤 출간된다.

그가 ‘석보상절’을 접한 것은 2005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사학과 박사과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와세 유키오씨가 하루 10시간 이상 강행군하며 2년 반에 걸쳐 작업 중인 일본어판 ‘석보상절’ 상권 원고.
가와세씨는 “박사과정에서 알게 된 한 여학생이 한국에는 일본 헤이안시대(794~1185년)에 나온 불교 문헌인 ‘곤자쿠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를 연상케 하는 ‘석보상절’이란 작품이 있다고 했다”면서 “그때부터 ‘석보상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연구하면 할 수록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석보상절’은 15세기 동아시아 전역의 불교 이해의 전체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며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작품이며, 아시아의 자랑거리”라고 호평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는 어문학적 관점에서만 ‘석보상절’의 가치를 평가하는 현실”이라며 “하지만 불교 전통을 지닌 일본과 일본인인 나로서는 한국문학이 아닌 불교학적인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석보상절’ 전체상 복원 위한 ‘강행군’=가와세씨는 “아쉽게도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는 모든 권수가 남아 있지 않지만, ‘석보상절’과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 모두를 번역해 보면 ‘석보상절’의 전체상 이해는 물론 내용도 대부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사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 연구에 매진한 그는 이듬해 ‘일본 닌초 대장경 비교에 대한 연구-고려대장경과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한일 불교에 대한 식견이 높다.

‘석보상절’ 번역 출간을 결심한 그는 중세 한글로 쓰여진 ‘석보상절’과 현대국어체로 다시 정리된 ‘석보상절’을 오가며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가와세씨는 “우선 출간하는 ‘석보상절’ 상권의 원고 마감이 이달 말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 일본어 번역과 주석을 다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가와세씨는 “중·하권까지 모두 마치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다”면서 “한국에서는 박사과정 연구과제가 있어서 시간을 많이 못 냈지만, 일본에 돌아와서는 하루 종일 ‘석보상절’ 출간 작업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중·하권 출간 시점은 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올해 65세인 그는 “나이를 생각하면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해하기 힘든 고어는 이조어사전(李朝語辭典)을 일일이 찾아가며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인 그와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히 그리고 충격적으로 시작됐다.

◆충격 속에 맺어진 인연, ‘한국을 일본에’=도쿄도 출신으로 사학 명문 와세다(早稻田)대학 학부와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한 가와세씨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국어(일본어) 교사였던 그는 1979년 8월 짧은 ‘이웃나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은 그에게 한국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가와세씨는 ”대통령이 총격으로 쓰러진 10·26 사건은 정말 충격이었다”며 “한국은 정말 흥미로운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한국어를 독학하기 시작했고, 나이 60을 바라보는 2003년 인생의 중대한 결단을 했다.

정년을 3년 앞두고 퇴직한 그는 빼어난 한국어 실력에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간직한 채 동국대 석사과정의 문을 두드렸다. 부인과 떨어져 6년 가까이 한국 생활을 한 그는 박사과정은 수료만 한 채 일본으로 돌아왔다.

한국인과 한국 학자들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15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작품’을 일본에 알리는 위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삶의 목표가 생겼고, 공부하면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라며 “의미 있는 일을 찾게 돼 기쁘다”고 했다. 그에게는 그 이상 욕심은 없다. 독자층이 극소수에 불과한 ‘석보상절’ 출간에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연금 생활자인 자신이 직접 부담하기로 했다. 자신을 “교수도 학자도 아닌 한 연구자에 불과하다”고 누차 말한 가와세씨는 “‘석보상절’ 같이 훌륭한 작품을 일본어로 단 한 사람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삶의 보람이 아닐까 한다”며 겸손해 했다.

요코하마(일본)=글·사진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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