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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박사 "지역주의는 이데올로기적 창조물"

입력 : 2009-07-14 17:10:04 수정 : 2009-07-14 1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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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저서 ‘만들어진 현실’서 주장 한국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지역의 차이가 ‘다른 차이’를 압도한다. 최근 한국 정치의 문제점들만 하더라도 지역주의의 틀로 설명되곤 한다. 모든 원인을 지역주의로 돌리는 ‘환원주의’나 다름없다. 이런 설명 방식은 순식간에 확산되고 어느 순간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런 틀이 반복될 때마다 ‘지역주의’를 ‘악’으로 규정하며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그 본질을 파고드는 논쟁은 희박했다. 지역주의 자체가 아닌 지역주의에 대한 담론이나 이에 대한 해석이 주를 이뤘다.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대표인 박상훈 박사(정치학·사진)는 최근 ‘만들어진 현실’(후마니타스)을 내놓고 지역주의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2000년 박사학위 논문인 ‘한국 지역정당 체제의 합리적 기초에 관한 연구’를 대폭 보완해 지역주의를 만드는 한국 정치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도했다. 제목은 지역주의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고스란히 담았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 문제로 이야기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실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창조’되고 ‘동원’된 것이지요.”

우리의 지역주의 문제는 사실(facts)의 차원보다는 인식(perception)의 차원에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동원된다는 설명이다. 그의 분석은 20세기 전후 이탈리아 사상가였던 안토니오 그람시의 “인간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사실을 인식한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말도 곧잘 유행한다. 박 대표는 “우리 정치의 문제를 지역주의 때문으로 치환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 세력으로 일부 언론과 정치인, 지배층을 꼽았다.

◇‘지역주의 타파’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지역주의로 이득을 보려는 세력과 적극적인 쟁투가 필요하다는 게 박상훈 박사의 생각이다.
그가 보기에 반호남 지역주의 설명 틀에도 작위적인 측면이 있다. 지역주의의 뿌리를 멀리는 삼국시대에 두는 것도 잘못이라고 설명한다.

“호남에 대해 부정적인 옛 문헌을 인용하며 삼국시대에 지역주의의 원류를 들고 있지만 잘못된 인식이지요. 호남보다도 다른 지역에 대한 부정적 기록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조선 정조가 ‘가장 어질고 충성스러운 고장’이라고 하는 등 호남에 대한 기록 자체도 긍정적인 기록이 훨씬 많지요. 호남을 설명하는 용어들을 작위적으로 선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요.”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영호남의 차별의식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해방 이후에는 이북 사람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결국 지역주의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결과물로 태동한 것으로 본다.

“권위주의 정권이 수도권과 부산 등 영남권에서 자원 투입을 늘리면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리게 됐지요. 영남 사람들은 영남 지역의 도시로 이주했지만 호남 출신은 서울 등 전국 각지의 도시로 이동한 것입니다. 이해관계 때문에 기존 원주민과 충돌하는 횟수가 늘었으며, 권위주의 세력은 선거 때마다 이를 적절히 활용했지요.”.

호남 차별의 심리는 같은 성격의 민주화운동에 관한 용어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렇다. 부마항쟁과 달리, 1980년의 광주는 한동안 ‘광주사태’로 규정돼 호남에 급진주의적인 이미지를 더하는 담론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약화하긴 했지만 때가 되면 또 지역주의 담론이 만연할 것이다. 외국의 지역주의는 종교적 독립과 분리주의 등으로 구체성을 갖는데 한국은 지역주의 자체가 결코 해결방안이 안 된다. 충청도 출신이라는 박 대표는 낙인과 편견의 문화를 없애야만 우리 사회가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4·3사태 이후 제주가 그랬고, 그 뒤 이북과 호남이 그랬어요. 지금은 같은 피를 나눈 중국동포가 외국인 노동자보다 더 차별받는 운명이에요. 1차적 유대에 관심을 두고, 이를 이용하는 문화로 이득을 받는 이들은 사실 극소수예요. 잘못된 심리구조를 극복해야 합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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