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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에도 '태극문양' 있었다

입력 : 2009-06-04 10:00:46 수정 : 2009-06-04 10: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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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서 백제목간 28점 출토… 국내 最古보다 앞서
기밀문서 봉함목간도 나와… 백제지방통치사 연구 도움
◇전남 나주 복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국내 최고 태극문양 목간 한 쌍(왼쪽부터)과 적외선으로 촬영한 사진 및 도면.
지방관청에서 공납과 그 과정을 기록하거나, 관청에서 문서나 물건을 운송할 때 기밀 유지를 위해 사용한 백제 목간이 공개됐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제404호) 주변 지역에 대한 지난해 발굴조사에서 이미 공개한 3점 외에도 28점의 백제 목간이 더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존처리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최근 완료했다고 3일 밝혔다.

김성범 소장은 “복암리 유적 출토 목간은 31점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지금까지 백제 지역 중 목간 출토량이 가장 많은 부여 능산리사지(37점) 다음으로 많은 양”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목간은 복암리 고분군 인접 지점에서 드러난 지름 5.6m, 깊이 4.8m가량 되는 백제 사비시대(538∼660년) 대형 원형 수혈유구(일종의 구덩이)에서 일괄 출토됐다. 새로 공개한 28점 중 13점은 묵서(墨書·먹글씨)가 잘 남아 있고 판독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는 문서 목간, 물품 꼬리표인 부찰(付札) 목간, 중국에서는 봉검(封檢)이라 하는 문서 봉함 목간, 여러 면을 깎아 글씨를 쓴 다면(多面) 목간, 글씨 연습용 습자(習字) 목간 등이다.

이 중 한 목간은 길이 60.8㎝, 너비 5.2㎝, 두께 1㎝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목간 중 가장 크다. 이 목간에는 씌어진 묵서는 총 57자로 추정되며, 그중 ‘수미지…’(受米之…), ‘공지(貢之)’ 등과 같은 문구가 확인된다. 김 소장은 “이는 지방관청에서 공납과 그 과정을 기록한 행정문서 목간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출토된 봉함목간은 주로 관청에서 물건이나 문서 꾸러미를 운송할 때 기밀 유지를 위해 봉투처럼 사용한 것이라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신라의 촌락문서에 대비해 백제의 촌락문서 정도라 할 수 있는 목간도 발견됐다.

이 목간에는 ‘대사촌(大祀村)’이라는 마을의 인명과 가축 실태, 그리고 수전(水田·논), 백전(白田·미상), 맥전(麥田·보리밭 혹은 보리논) 등과 같은 토지의 경작 형태를 보여주는 내용과 더불어 ‘형(形)’이라는 토지 단위 및 ‘72석(石)’ 등의 소출량이 보인다.

나아가 ‘병지’(幷之·아우르다)처럼 문장이 끝났음을 의미할 때 사용한 글자(혹은 부호)인 ‘之’라는 백제식 이두 표현이 보이며, 다른 한 쌍의 목간에서는 태극문양이 확인됐다. 이 태극문양은 경주 감은사지 장대석에서 확인된 국내 최고(最古)의 태극문(682년)보다 앞서는 것으로, 주역이나 오행(五行) 혹은 그와 밀접한 도교사상의 흔적을 말해주는 자료로 추정된다.

이번에 공개된 목간은 백제의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 발견된 데다 그 종류와 내용이 다양해 백제사, 특히 백제 지방통치제도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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