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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붓’ 애니메이션 종주국을 홀리다

입력 : 2009-03-17 09:35:07 수정 : 2009-03-17 09: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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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첫 동양계 애니메이터 넬슨 신
◇넬슨 신 감독이 서울 송파구 문정동 애이콤 프로덕션 집무실에서 애니메이션 원화 작업을 하고 있다.

2007년 개봉, 큰 인기를 모았던 SF 액션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의 원조 애니메이션이 한국인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해 국내 관객 740만명을 동원한 데 이어 올여름 속편이 공개되는 ‘트랜스포머’는 1986년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 나온 ‘트랜스포머;더 무비’(더 무비)를 3D 실사영화로 만든 것이다. 1970∼80년대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며 ‘더 무비’를 만들어 애니메이션 마니아 사이에서 ‘트랜스포머의 아버지’로 알려진 넬슨 신(본명 신능균·72) 감독은 황해도 평산이 고향인 한국인이다.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과 ‘핑크 팬더’, ‘스쿠비 두’, 그리고 영화 ‘스타워즈’의 광선검 장면은 모두 그의 손에서 그려졌다.

일흔을 넘긴 백발의 고령에도 작업 현장을 지키고 있는 신 감독을 최근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심슨가족’                                                             ◇‘트랜스포머;더 무비’

#1. 할리우드 최초 동양계 애니메이터

1960년 한 신문사에서 시사만평을 그리고 CF용 애니메이션 일을 하던 신 감독은 “이왕 배울 거라면 ‘애니메이션 종주국’ 미국에서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고 1971년 혈혈단신 도미했다.

영어에 약했던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접시닦이, 페인트 칠 등 허드렛일이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재주 하나는 타고났던 신 감독은 그림의 꿈을 잊지 않았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애니메이션’, ‘카툰’ 등이 들어가는 곳을 찾아내 무조건 전화부터 하고 돈키호테처럼 밀어붙였다.

미국인들로선 처음 보는 ‘황색 애니메이터’였지만, 미국인 10명이 한 달 동안 할 일을 혼자서 1주일 만에 그려내는 그의 부지런함에 혀를 내둘렀다. 신 감독이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확실하게 이름을 알린 것은 1976년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 특수 효과를 맡고나서다.

“한번은 오버노출을 하고 그 다음은 정상노출을 해서 오버노출, 정상노출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반복했습니다. 레이저 검이 형광등처럼 ‘웅웅’하면서 그럴듯한 효과를 냈지요.”

‘스타워즈’ 제작진이 맡긴 일을 완벽하게 해내자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그를 찾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었다.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과 ‘아더’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미국의 ‘TV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에미상(최우수 애니메이션)을 무려 10차례나 받으며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신화’가 됐다.

◇‘왕후 심청’                                                            ◇‘아더’

#2. 최초의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제작

이북 출신의 신 감독은 남과 북이 힘을 모아 만든 우리 애니메이션으로 세계 시장에 우뚝 서겠다는 꿈이 있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기술과 노력을 총집약해 세계 무대에 통할 만한 작품을 내놓고 싶었던 것.

신 감독의 뚝심은 결국 2005년 최초의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된 ‘왕후 심청’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란 타이틀과 함께 그해 8월 개봉된 ‘왕후 심청’은 북한의 ‘조선 4·26 아동영화 촬영소’가 원화 및 동화(動畵) 작업을 맡고, 사전 제작 및 영화 후반 작업은 서울에서 마쳤다. 신 감독은 특히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닌 한국인의 얼굴을 그리는 데 역점을 뒀다. 국내에 소개된 애니메이션 대다수가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어서 우리 눈에 어색했던 인물 묘사를 최대한 한국인 특징에 맞춰 그리고 싶었던 것. 이렇게 해서 눈두덩이 살점이 두둑하고 눈과 눈썹 사이가 먼 한국인 ‘심청’이 탄생했다.

‘왕후 심청’은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에서 대상을 받고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경쟁부문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관객은 기대만큼 들어오지 않았다.

“70억여원의 제작비는 둘째치고 7년여 제작 기간 들인 공력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올해 안에 업그레이드된 ‘왕후 심청’을 재개봉할 생각입니다.”

#3.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을 일구다

1985년부터 애이콤 프로덕션을 운영한 신 감독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2002년 애니메이션 용어 사전을 집대성해 ‘넬슨 신의 애니메이션 용어 사전’을 펴냈고, 대학에 출강해 전문 인력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2007년 2월에는 한국애니메이션예술인협회 회장에 선출돼 2년간 활동했다.

신 감독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기술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검증됐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최근 수년간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저학년 어린이용 하류문화라고 치부하는 인식이 아직도 많다”며 “애니메이션은 무한한 창의성과 고도의 기획력이 결합된 미래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형구 기자 julye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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