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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미얀마, 인레 호수-캐리를 닮은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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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1-20 17:21:45 수정 : 2008-11-20 17: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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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잉태한 삶터서 소울메이트를 만나다
◇한쪽 다리로 노를 젓는 어부. 인레 호수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볼거리다.
미얀마의 마지막 여행지인 인레 호수로의 발길은 가벼웠다. 사실, 발길보다 더 가벼웠던 건 호주머니 속의 남은 돈이다.

미얀마는 신용카드나 현금카드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규모 있는 씀씀이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여행정보가 그리 풍부한 편이 아니라서 여행자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비용을 초과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인레 호수에서는 웬만하면 돌아다니지 않고 그동안 여행의 피로를 풀며 한가로운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운하 옆에 작은 텃밭이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 친절한 숙소 식구들, 때때로 내어오는 무료 과일과 음료는 그동안의 피로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약간 불편한 점이 있다면, 밤 9시만 넘으면 전기 공급이 끊겨 세상이 온통 적막에 휩싸인다는 점이다. 또 새벽 5∼6시부터 운하를 통과하는 요란한 긴꼬리보트의 디젤엔진 소리가 알람쯤이라고나 할까?

천둥 같은 엔진 소리에 경기 일으키듯 깨어 눈을 비비며 방문을 나섰다. 모두 바쁜 손을 놀리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세상은 벌써 대낮이다. 방갈로 문 앞의 작은 테이블에 앉으니 라임 주스를 대령한다. 아침 메뉴를 고르고 주스를 마시며 잠을 깨고 있는데, 앞쪽 식당 테이블에서 한 서양여자가 현지남자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특이하게도 서양여자는 미얀마어로 말하고 있었는데 간간이 의사소통이 힘들 때면 영어를 사용했다. 조금 귀를 열고 들어보니 불교와 인레 호수 주변의 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학자인가? 일하러 왔나 보군.…’

아침을 먹은 뒤 이곳 주변 정보를 물으려 한가해진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굿모닝!”

세상에나! 웃는 모습이 ‘섹스앤더시티’의 캐리와 너무 똑같다. 하마터면 캐리 브래드쇼의 팬 모드로 돌변할 뻔했는데 이런 방문자 숙소에 영화배우가 올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공중 부양했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녀의 이름은 아쉽게도 ‘캐리’가 아닌 소피, 프랑스인이다. 영어를 잘하는 프랑스인은 소피가 처음인데 영국에서 공부하고 살았기 때문이란다. 회사에 다니며 미얀마어를 배우고 있으며, ‘미얀마 불교와 여성’을 주제로 인터뷰 겸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단지 여행정보를 좀 묻고 주변을 돌아보려 했는데, 그녀와 수다에 빠지는 바람에 반나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고 말았다.

소피는 필자와 매우 닮았다. 수다쟁이인 데다 술·담배를 안 하고(프랑스인이 와인을 못 마시다니!), 여성학에 관심이 많은 매우 독립적인 여성이고, 피부가 민감하고, 심지어 탄산음료 대신 물만 먹는 것까지 너무 똑같다. 서로 사귀는 남자친구 성격까지 비슷해서 우리는 단박에 친한 사이가 됐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 태어나면서부터 물과 함께해 왔던 탓에 어린아이조차 물이 바로 밑인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날마다 정전이 되는 적막의 게스트하우스 정원에서 초를 켜놓고, 촛불이 다 닳아 꺼질 때까지 온갖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은 밤이 되면 잠자는 거 외엔 전혀 할 일이 없던 이곳에서 ‘꿍짝’이 맞는 수다쟁이 둘이 만나니 시골 촌구석에 밤의 신세계가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낮에는 둘이서 자전거를 빌려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는데, 사원을 둘러보며 이런 얘기를 했다.

“미얀마의 불교에서는 여성의 불평등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실제로 사원에 가면 ‘여자는 올라올 수 없음’이라는 팻말을 보게 될 거야. 또 스님들은 매일 공양을 하러 다닐 수 있지만 비구니들은 풀문(Full moon)과 다크문(Dark moon)에만 마을로 나와 공양을 할 수 있어. 그래서 자세히 보면 스님들은 갓 한 음식을 받아가지만 비구니들은 쌀이나 계란 등 저장 가능한 음식을 받아간다고.”

어느 날, 실제로 운 좋게도 비구니들의 행렬을 볼 수 있었는데 정말 그녀의 말대로 저장 가능한 쌀을 받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시아인인 나보다 훨씬 더 아시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남녀의 ‘차이’인지 ‘차별’인지를 밝혀내는 일이 그녀가 관심 갖는 일이지만 필자 역시 사원에서 여자들만 올라갈 수 없는 단상을 보자 ‘차별’받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미얀마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한국에서의 데이트, 결혼, 육아, 정부의 지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데이트에서는 한국과 거의 비슷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차이점이 많았다. 확실히 출산 여성에 대한 정부의 금전적인 지원이나 장기간의 육아휴직은 훌륭했다. 국가에서 탄탄하게 운영하는 유아원과 유치원은 환상적이었고, 이혼 후 편모가정에 대한 법적인 체제와 지원이 잘 잡혀 있어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프랑스 역시 아직도 멀었다면서 복지 하면 역시 북유럽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런 주제에 흥분하며 이야기하게 되지만, 역시 우리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오자 어느새 반달 눈이 되며 그리움에 사무친다. 남자친구가 보고 싶지만 긴축재정에 인터넷을 할 수 없다고 하자 소피는 이곳으로 전화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 남자친구가 좋아할 거라며 자기 방에서 예쁜 엽서를 가져와 조금은 유치하지만 기뻐할 거라며 작은 꽃을 장식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공통점은 먼 나라 파란 눈의 프랑스인도 따뜻한 자매애로 맺어준다.

여행작가(www.prettynim.com)



# 인레 호수(Inle Lake)= 미얀마 샨(Shan)주에 있는 가장 큰 호수로 해발 880m의 고원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 양곤에서 660㎞, 만달레이에서 330㎞ 떨어져 있다. 호수의 크기는 116㎢로 폭은 11㎞, 길이는 22㎞에 달한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인레 호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현지주민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특히 한 발로 노를 젓는 어부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호수 주변의 사람들은 주로 어업과 농사를 짓는데 호수의 물을 이용해 토마토나 쌀 등을 수경재배하는 것도 독특하다.

#여행정보= 미얀마 양곤까지 직항은 없고, 한 차례 경유하는 타이항공과 싱가포르항공이 있다. 인레 호수까지는 국내선이나 버스, 배를 이용해 들어갈 수 있다. 양곤에서 버스로 14∼16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72∼80달러의 국내선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간에서는 배로 7∼8시간, 버스로는 9시간이 걸린다. 미얀마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현금카드와 신용카드를 거의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달러를 가져가 환전하는 것이 좋다. 10달러당 1만2000∼1만3000차트에 환전할 수 있으며 환율은 대도시가 좋다. 저렴한 호텔 요금은 5∼10달러, 식사는 2000∼3000차트 하는데 숙소에서 모두 포함해 비용을 내는 것도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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