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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콜카타…‘죽음의 집’ 밝히는 마더 테레사의 사랑

입력 : 2008-06-06 13:53:24 수정 : 2008-06-06 13: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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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고되지만, 마더하우스 봉사자들의 표정은 항상 밝다.
[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결심한 것이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은 인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자원봉사로 마무리하겠다고 말이다.

두 번째 인도 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콜카타까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콜카타는 5년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여행자들의 거리인 서더 스트리트도 그대로였고, 낡아빠진 숙소, 심지어 샌드위치 가게까지 그대로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머무는 패러건 호텔의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마더하우스의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봉사자 오리엔테이션은 1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마더하우스에서 운영하는 7개 시설에 대한 소개를 듣고 한국 수녀님과의 상담을 통해 일할 곳을 배정받게 된다.

봉사자들의 일상은 단순하다. 오전 6시 정도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30분에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숙소를 나선다. 걸어서 무슬림 거리를 지나 마더하우스에 7시쯤 도착하면 식빵 두 조각, 바나나 한 개, 차이(인도의 전통 차)로 아침식사를 하며 다른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가 끝나고 종이 울리면 “We have our hope in Jesus…”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른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봉사자들이 있으면 생큐 송을 불러주며 축하해 주기도 한다.

이후에 ‘차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셔터문이 열리고 찬란히 쏟아지는 햇빛 속에 봉사자들은 삼삼오오 각자의 봉사지로 떠난다. 필자는 이 시간을 매우 좋아했는데, 빛 속으로 사라지는 봉사자들의 모습이 꼭 날개 없는 천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 10월 콜카타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을 응원하는 유철이와 필자.(뒷줄 가운데와 오른쪽)

필자가 봉사활동을 하던 곳은 프렘단이라는 곳으로, 병든 성인 남녀를 수용하는 곳이다. 며칠에 한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지만, 많은 봉사자들이 선호하는 ‘칼리가트’(성인 환자들이 수용된 곳으로 병세가 심각한 사람들이 많다. ‘죽음의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에 가려져 봉사자의 일손이 항상 부족한 곳이다. 
◇콜카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릭샤라는 인력거.

프렘단은 기찻길 옆의 빈민촌에 있는데, 문을 열면 환자들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굿모닝 안티.”(안녕, 이모: 여자 봉사자들은 모두 안티라 불린다)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일할 곳으로 가면 산더미 같은 빨랫감들이 우리를 맞는다. 겹쳐 놓은 벽돌을 의자 삼아 빨래와의 전쟁을 끝내면 간식 시간이 주어진다. 평범한 비스킷과 차이지만, 이 맛을 그리워하는 봉사자들이 많다.

간단한 휴식이 끝나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배식을 한다. 간혹 음식이 모자라기도 하기 때문에 골고루 잘 배분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설거지까지 끝내면 이날의 봉사활동이 끝난다.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점심을 먹고 각자 시간을 보낸다.

봉사활동이 익숙해진 어느 날 아침, 혼자서 마더하우스로 걸어가고 있었다. 필자의 느릿한 발걸음과 비슷한 속도로 가는 동양 남자가 있어 말을 걸었다. “Hi, Are you going to Mother House?(안녕하세요, 당신도 마더하우스에 가고 있나요?)” “Yes, I’m going to there.(네, 저도 그리로 가고 있어요.)” “Where are you from?(어느 나라 사람이죠?)” “I’m from South Korea.” “어머. 한국사람이셨어요” 머리형과 옷차림이 특이해서 일본 사람인 줄 알았더니 한국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신유철. 1년간의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아시아 여행을 하는 중이다. 보통은 위에 소개한 대로 수녀님과 상담해서 봉사지를 선택한 후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는 등록도 하지 않고 일주일에서 열흘씩 7곳 모두를 차례로 돌며 일을 하고 있었다.

말도 별로 없고 한국 봉사자 그룹과 조금은 떨어져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이메일을 교환해 연락을 하게 되었다. 5개월 반의 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복학해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더니, 얼마 전에 S중공업에 취직이 되었다.

부산에 갈 일이 있어 그가 일하는 거제도에 들러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마더하우스에서 일하면서 뭘 느꼈냐고 물었더니 인간은 결국 누구나 한번은 죽고,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을 배웠단다. 그래서, 항상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그의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

“행복이라… 그럼, 여행할 때랑 지금이랑 언제가 더 행복해?” “여행할 때가 더 행복하긴 하지만, 힘들게 취업 준비 중인 친구들에 비하면 안정된 직장을 가진 지금도 행복해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마더하우스의 봉사활동을 준비하던 그 시간에 이제 그는 직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여행자는 항상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그 역시 올여름 이집트 여행을 준비 중이다. 



여행작가

# 콜카타(Kolkata)

인도 서벵골주의 주도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1772년부터 1911년까지 인도의 수도이기도 했다. 콜카타라는 이름은 인도의 죽음과 파괴의 여신인 칼리에서 나왔다. 1690년 영국인들이 처음 도착한 곳이 칼리카타(Kalikata, ‘칼리의 땅’이란 뜻)라는 마을이었는데, 여기에서 콜카타(Kolkata)란 이름이 지어졌다. 관광지로는 칼리 신전(Kali Temple)과 영국군의 요새로 사용되었던 포트 윌리엄(Fort William), 빅토리아 여왕의 추모 기념관인 빅토리아 메모리얼(Victoria Memorial),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 타고르의 자취를 볼 수 있는 타고르 하우스(Tagore House) 등이 있다.



# 여행정보

한국에서 콜카타로 가는 직항은 없다.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싱가포르항공과 태국 방콕을 경유하는 제트 에어웨이 인디아(Jet Airways India), 타이항공이 있다. 인도는 사전 비자가 필요하며 인도대사관의 비자 대행사에서 받을 수 있다. 6만5000원의 인지대와 8690원의 비자 수수료가 필요하다. 신청하면 다음날 받을 수 있다. 화폐는 루피(Rupee)를 쓰는데 1루피는 26원 정도다. 저렴한 호텔의 도미토리는 80∼100루피 하는데, 콜카타에서 깨끗한 숙소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10∼30루피면 서민적인 식사를 할 수 있고, 차이는 3∼5루피정도 한다. 깨끗하고 잘 갖추어진 음식을 먹고 싶다면 100루피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인터넷은 1시간에 15∼20루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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