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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인도 맥로드간지, 티베트인들 '자유의 심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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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3-29 10:52:47 수정 : 2008-03-29 10: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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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로드간지 마을 너머로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보인다. 저 산을 ‘임마’가 넘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은 국가 인도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힌두교를 비롯해 이슬람교, 시크교, 천주교, 불교 등이 있는데 종교의 다양성은 인도여행의 특별한 매력이기도 하다. 한 지역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어느새 종교가 달라지고 의상, 문화까지 바뀌어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맥로드간지도 그랬다. 무더웠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고산지대의 쌀쌀한 날씨로 여행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기에 걸렸다. 길에서 만난 프랑스 아저씨의 “이곳에는 단 하나의 내셔널 송(National Song)이 있는데, 그건 바로 ‘켈록켈록’(기침소리)이란다”라는 말에 모두 박수를 치며 공감할 정도였다. 이곳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곳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인들의 인도 안 작은 국가이기도 하다.
◇코라에 쓰여진 티베트 경전의 글귀.

티베트 절에는 매일 특유의 낮은 음으로 불경을 외우는 라마승들이 있었다. 이들의 소리는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긴장했던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는데, 한국의 한 여성은 한 달째 그 시간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궁과 절 주변을 펄럭이는 깃발, 코라(Kora)를 돌며 기도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 등 맥로드간지의 매력은 많은 여행자들을 끌어들인다. 힌두교의 성지인 바라나시와 함께 장기 체류자가 유난히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여행 중에 만난 혜은이라는 친구와 티베트 스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었다. 햇살이 따뜻하던 어느 날, 발코니 의자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이다. 생김새도 딱 한국사람이어서 “한국사람이세요?”라고 물으니 “티베트사람입니다”라고 깍듯하게 말한다. 아무리 봐도 티베트사람들은 한국사람과 너무 똑같이 생겼다. 
◇티베트인은 한국인과 정말 닮았다.

그의 이름은 임마 도르제(Njma Dorjee)다. 원래 중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가족들은 중국에 두고 혼자 이곳에 와 있다고 했다. 어떻게 왔냐고 했더니 “걸어서”라고 하기에 피식 웃고 말았다. “거짓말하지 마. 저렇게 높은 히말라야산맥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거길 어떻게 걸어서 넘니?” 그랬더니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 걸어서 왔어”라고 말한다. 그의 대답에 갑자기 웃음이 쏙 들어갔다. 진짜인가 보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두 달이 걸렸어. 돈이 없으니 당연히 걸어서 넘었지. 눈 덮인 히말라야산맥을 넘는데 나무나 돌에 걸려 상처가 나는 건 다반사였고, 긁히고 피가 났어. 약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천으로 대충 동여매고 걸었어. 신발은 닳고 닳아서 거의 누더기가 되어 발가락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였지. 동상에도 걸렸어. 산에서 몇 번이나 굴러떨어져 죽을 뻔도 했어. 하지만, 난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이곳에 왔다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숙연해졌다. 중국여행을 할 때 ‘달라이 라마’ 사진을 집에 붙여놓거나, ‘달라이 라마’라는 말만 해도 중국 공안에 잡혀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생존이 아닌 종교적인 이유로 가족을 두고 험준한 히말라야산맥을 넘다니 믿기지 않았다.
◇색색의 깃발 너머로 히말라야산맥의 만년설이 보인다.

임마는 이곳 게스트하우스에서 버는 돈 전부를 티베트 불교 단체에 기부하고 있었다. “그럼, 옷이나 먹는 건 어떻게 해결하고?”라고 질문했더니 “옷은 여행자들이 주는 걸 입고, 먹는 건 숙소에서 해결해”라고 답한다.

맥로드간지 주변을 둘러볼 때 TCV(Tibetan Children’s Village)라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 이곳은 각 나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에 지원해 준 지원금으로 티베트인들을 교육하는 곳이란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되는데, 티베트 독립을 위한 교육기구라고 할 수 있다. 
 
◇필자와 함께 지낸 혜은이와 티베트인 임마(오른쪽).

요즘 TV와 신문에는 티베트 라싸에서 벌어지는 티베트 독립 시위 소식을 한창 보도하고 있다. 3% 한족이 97% 티베트인들의 땅을 지배하며 벌어지는 종교 억압과 경제권 장악으로 라싸의 유혈사태는 이미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맥로드간지에서 살게 되어 행복하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임마가 보고 싶어졌다. 벌써 7년 전이지만 임마의 담담한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가 목숨을 걸고 넘은 히말라야산맥보다 티베트 독립에 대한 열망은 훨씬 더 높고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망이 비단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님을 안다. 티베트인들이 티베트 불교를 믿으며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여행작가



#맥로드간지 (Mcleod Ganj)

인도 북부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 주에 자리한 해발 1800m의 작은 마을로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자리 잡고 있다. 1959년 당시 인도의 네루 총리가 중국에서 망명한 달라이 라마와 난민들에게 머물도록 한 곳이다. 이곳에는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Tenzin Gyatso)가 머물고 있는 출라캉(Tsuglagkang, ‘궁전’이란 뜻)과 티베트절인 남걀사원(Namgyal Gompa)과 티베트 도서관, 학교 등이 있다. 달라이 라마는 1년에 수차례 전 세계를 돌며 티베트의 독립을 호소하고 있으며, 궁에 머물 때면 설법시간이나 접견시간을 통해 일반인들과 만난다.



#여행정보

인도여행을 위해서는 사전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 발급에는 1박2일이 소요되며 비용은 6만5000원. 아시아나항공이 델리까지 직항편을 운항하며, 1회 경유하는 항공편은 캐세이 퍼시픽, 타이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이 있다. 델리에서 맥로드간지까지는 버스로 10∼12시간 걸린다. 여행자를 위한 숙소는 매우 많으며 가격은 200∼300루피(1루피=약 27원)이다. 티베트 음식은 한국 음식과 매우 비슷하다. 만두와 비슷한 음식인 모모, 수제비와 비슷한 뗌뚝, 칼국수와 비슷한 뚝바, 그리고 묵무침과 비슷한 음식까지 맛볼 수 있다.


〈사진 제공=전명윤(www.indofantaz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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