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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 기자의 책갈피] 한국인 저작물 원전(原典)시대 열렸다

입력 : 2008-03-22 12:48:10 수정 : 2008-03-22 12: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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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디오의 유산’(한길사)을 펴낸 성균관대 건축학과 김영섭 교수는 출판기념 모임에서 “우리나라도 이젠 ‘원전(原典·the original text, a source book)’을 가질 때가 됐습니다. 제가 쓴 책이 오디오 분야의 원전이 돼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자주 인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자도 처음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책을 펼쳐 보며 끄떡였던 기억이 있다.

‘기준이 되는 본디의 고전’이란 뜻을 가진 ‘원전’ 하면 우린 ‘성서’나 ‘그리스·로마 신화’,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마르크스·프로이트·칸트 등 서구의 저명 철학·사상가나 공자·맹자 등 중국 선현들의 저작물을 떠올리는 데 익숙하다.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삼국사기’ ‘삼국유사’ 정도가 거론될 정도로 인문학 분야의 원전이 빈약하다. 독창적 저작물보다 짜깁기한 누더기 저작물이 많아 오죽하면 ‘지적 식민지’라고 자괴하겠는가.

이런 상황에 한국인의 저작물 하나가 세계경제와 사조를 선도하는 미국 출판계에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있다. 바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 영어판이 지난 17일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미국 ‘아마존닷컴’에서 종합순위 128위를 한 것. 한 해에도 10만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고 팔리는 책이 수십 만종임을 고려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한국인 저작으로는 역대 최고 순위임은 물론이다.

특히 ‘경제경영서’ 세부 카테고리인 ‘Economics’ 부문에서는 전 FRB 의장 그린스펀의 ‘격동의 시대’를 누르고 2위를, ‘International’ 부문에서는 크리스 앤더슨의 ‘롱테일 경제학(The Long Tail)’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가 흔히 비소설이라고 부르는 ‘Non-fiction’ 분야의 ‘Globalization’ 부문에서도 당당히 1위를 꿰찼다.

한국어판을 낸 도서출판 부키의 박윤우 대표는 “장하준 교수도 이 부문에서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로 이름을 떨치는 프리드만의 ‘세계는 평평하다’를 제쳤다는 데 크게 고무돼 있다”고 전했다. 왜냐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미국이 올인하는 신자유주의를 신랄히 비판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세계 제1의 경제 대국 미국이 방향을 약간만 바꿔줘도 가난한 나라들에는 엄청난 도움이 되는데, 미국이 이를 기피하므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인 저작물이 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원전’으로 등극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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