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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 줄잇는 듯이 묘사·선동
언론에 비친 간도특설대
◇간도특설대 지원을 독려하는 만선일보 사설과 기사들.
만주국 시절 유일한 한글신문이자 친일신문인 ‘만선일보(滿鮮日報)’를 보면 간도특설대의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만선일보는 1940년대 초반 간도특설대를 ‘국가의 간성’으로 치켜세우며 조선 젊은이의 입대를 부추기는 데 열을 올렸다.

‘제2차 조선인 특설부대 모병’이란 제목의 1940년 1월30일자 사설에서 만선일보는 “2차 조선인 특설부대 모집은 조선 국민의 국가의식이 아시아 여러 민족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열렬하다는 뜻”이라고 규정한 뒤 “모병은 우리에게 중대한 의무 이행인 만큼 차제에 선계(鮮界·조선) 국민 된 자의 자각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이어 조선에서 시행 중인 특별지원병 제도를 찬양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도정신(皇道精神)을 강조하는 등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다.

1940년 1월12일자는 특설대 윤모(20)·손모(18) 상병이 군관(장교)후보생 시험에 합격한 소식을 전하며 “(특설대가) 토비 공작에 혁혁한 무훈을 세워 널리 인정받고 지방 관민의 환영을 받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해 4월24일자 ‘부자의 열렬한 지원으로 특설부대 합격’ 제하의 기사는 아들을 특설대에 보내려는 어느 아버지의 눈물겨운 호소를 묘사했다. 기사에 따르면 아버지는 “정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장남이지만 입대시키려는 것”이라 말했고, 스물한 살의 아들은 “동아시아 신질서 건설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무렵 특설대에 보낼 위문금 모금 기사도 단골처럼 지면에 등장하는데, 그해 6월9일자는 위문금 2만5000위안(元) 모금 완료를 알리며 “간도 조선인의 쾌거”로 평가하고 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만선일보의 어조는 한층 선동적으로 변해갔다. 1941년 2월4일자는 ‘청년의 의기를 보라! 용정(龍井)도 정원 초과… 영예의 특설부대에 입영할 장정’이란 제목을 뽑아 조선족 젊은이들의 입영이 줄을 잇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입대시켜 달라고 눈물 머금고 애원… 도문(圖們)의 세 애국청년’(1941년 2월25일)처럼 과장된 표현을 쓴 경우도 허다했다. 1942년 2월6일자는 숫제 “나오라, 선계 남아여! 조선인 특설부대는 용사를 부르고 있다”고 보도하는데, 이쯤 되면 신문인지 광고전단인지 모를 지경이다.

특별취재팀=류순열·김태훈 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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