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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무맥] <29> 낙산사 주지 무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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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11 09:38:20 수정 : 2010-05-11 09: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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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한 몸으로 기예를 닦는 것은 남이 아닌 나를 깨뜨리기 위함이죠”
무예와 권법의 중간에 있는 무술, 흔히 무기를 잡는 것이 격에 어울리지 않은 불가의 스님들이 애용하는 것이 봉술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무기를 들지 않으면 무예가 아니다. 그래서 무인들은 살상의 무기가 낯선 현대에 들어 무기 대신에 곤봉으로 무예를 익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살상의 무기, 냉병기의 필요성이 줄어든 요즘 봉술은 무인들의 무기에 대한 욕구를 달래준다. 봉은 무게감과 함께 실감을 주며, 때에 따라선 무기가 되기도 한다. 봉술의 고수들은 봉 혹은 막대기 하나로 얼마든지 여러 사람을 상대하여 무릎을 꿇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봉술은 ‘무예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현재 한국에서 봉술의 최고수는 낙산사 주지 무문(無門) 스님이다. 무승(武僧)은 소림권으로 결코 낯설지는 않다. 무문 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이미 십팔기의 고수였다. 해범(海帆) 김광석(金光錫) 선생의 수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현재 해범의 문하에는 100여명의 고수가 있다.

◇봉술의 고수 무문 스님이 낙산사 앞뜰에서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종종 우스개로 말한다. “무술을 하고 싶어서 출가했습니다.” 그 말에는 일말의 진정성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찌 인생의 절체절명의 출가를 두고 그랬겠느냐마는 그의 무술 사랑을 읽을 수 있다. 실지로 무골(武骨)이 공부를 해야 문무겸전의 진정한 대인이 나온다고 한다. 실지로 학자나 예술가 등도 무골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훌륭한 문인이나 예술가, 스님이 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무골들은 시세에 따라 변하지 않고 초지일관하는 고집과 무덕을 바탕으로 하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면 무혼(武魂)이 느껴진다. 야생의 스님이랄까. 한국 불교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으로 손색이 없다. 무덕을 지녀야 큰일을 하는 것은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마찬가지이다. 선(禪) 공부, 공(空) 공부에 찌든 스님이 아니라 보기 드물게 단순함과 용기를 물씬 풍긴다.

해수관음보살의 도량, 낙산사. 2005년 4월 5일, 일대에 불어닥친 불의의 대형 산불로 전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그동안 조계종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지만 복원불사를 하느라 스님은 힘겨운 몇 해를 보냈다. 무문 스님은 소임자로서 묵묵하게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하였다. 복원불사가 도리어 그를 실천불교의 모범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이러한 면면이 당시 주지이며 그의 법은사(法恩師)인 정념(正念) 스님에게 믿음직하게 보였던지, 조계종단에 강력 천거하여 법랍 최연소 주지가 됐다.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주지 임기를 시작했다. 정념 스님은 한주(閒主)로 추대되었다. 무문 스님은 또한 젊은 엘리트 승려답게 정념 스님이 낙산사 복지재단을 설립할 당시 노인요양원 원장으로서 모범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지역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2005년에 사회복지법인 낙산사복지재단을 설립하여 이전에 신흥사복지원 명의로 운영하던 낙산노인전문요양원(2005년), 낙산주간보호센터(2005년) 등을 운영한다. 이후 2006년에 낙산모자원을 설립하고 양양읍내에 어르신을 위한 무료급식소와 노인일자리 지원사업, 무산(霧山)지역아동센터, 의상어린이 도서관 등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는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낙산사복지재단으로 되어 있다.

차근차근 실천불교의 모습을 보인 것이 어느 덧 조계종의 대사회사업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그에 대한 신뢰는 무술이 아니어도 안팎에서 두텁다. 그의 선 공부도 만만치 않다. 바쁜 가운데서도 동국대 대학원에서 ‘선병(禪病) 치료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01년). 무문 스님은 96년 건봉사 영수(英壽)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97년 녹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2004년 보성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 88학번으로, 그해 여름 ‘무예도보통지실기해제’ 출간 기사를 읽고, ‘전통무예 십팔기’ 동아리에 가입한 뒤, 그 후 십팔기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신촌 십팔기 도장(한국무예원)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88년에 처음 실시된 ‘제1회 전통무예십팔기 전국대학생연합회 발표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는 해범 선생에게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6년여 동안 착실하게 십팔기의 각종 무예를 익혔다.

해범 선생의 무예는 도가(道家) 계열에 속한다. 자연히 그는 도가에도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일제당에 다니던 어느 날,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궐기 도량이었던 건봉사에 들른 것이 인연이 되어 갑작스럽게 출가를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역시 무승의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왜 하필, 승군이 궐기한 곳에서 머리를 깎게 되었을까. 건봉사는 임란 때에 서산대사, 사명당의 승군이 궐기한 곳일 뿐 아니라 일제 때 만해 한용운 스님이 야학 ‘봉명학교’를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건봉사가 말사로 전락했지만 조선조까지는 강원도 일대의 본사였으며, 아직도 금강산 최남단에서 금강의 기운을 내뿜으면서 방문객으로 하여금 기감을 느끼게 하는 도량이다. ROTC 장교로 최전방에서 군복무 후 잘나가던 대기업 엘리트 사원이었던 그는 항상 깨달음에 대한 갈망으로 고민했다. 특히 몸 공부와 마음 공부를 동시에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컸다. 타고난 문무겸전의 혈통이었던 셈이다. 스님의 문무겸전은 일반과는 좀 다르다. 흔히 무술계의 문무겸전은 무학(武學)과 무술(武術)을 겸하는 것을 말하는데, 스님에게는 무학과 선학(禪學)이 문에 해당하고 무술이 무에 해당된다.

대형화마로 인해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적송들을 잃어버린 낙산사는 그동안 식재를 하였다고 하지만 어딘가 썰렁한 분위기를 저버릴 수 없다. 그나마 이 절을 세운 의상대사의 이름을 딴 의상대가 온전하고, 거대한 해수관음보살상이 망망한 속초바다를 지켜보고 있기에 위안이 된다. 그리고 홍련암 관음굴의 해조음이 불자들로 하여금 해인으로 인도하기에 내방객이 붐빈다. 인도 남해 뭄바이 부근의 포탈라카산(보타낙가산), 중국 저장성 저우산열도의 푸퉈산과 함께 세계 3대 관음성지 오봉산 낙산사의 전통과 위풍을 회복하려면 국민적 성원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비선무’라는 이름처럼 공중을 날고 있는 십팔기 비선무 수련생들.
스님은 그 동안 인적이 드문 건봉사에서 마음놓고 고난이도의 기술을 닦았으며, 봉정암에서는 적멸보궁 기도 도량이라 열심히 정진하였다고 한다. 그가 주지가 되고 처음으로 한 일 중에서 ‘비선무(飛禪武)’ 수련원의 구비는 야심작이다. 스님은 비선무의 창시를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선 공부 때문에 건강에 시달리는 도반들을 보면서 달마대사의 역근경에 못지않은 십팔기의 무술을 절집에 뿌리내리게 할 요량이었다. 그는 기초가 탄탄한 무술의 고수이다. 저잣거리에서 이것저것 주워 담은 무술이 아니라 가문 있는 십팔기 집안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길러낼 제자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뿌듯해온다. 낙산사가 스님과 신도들과 일반 수련자들을 위해 마련한 유스호스텔의 1층 70평 남짓한 공간은 나름의 시설을 갖추었다. 도장의 이름을 ‘십팔기 비선무 수련원’이라고 했다. 도장의 전면에 조계종 마크와 십팔기 마크가 좌우에 나란히 그려진 ‘십팔기 비선무’ 현수막도 걸었다. 양양 일대의 청소년들에게도 개방할 예정이다. 이제 한국 불교계에 전통무예 십팔기를 바탕으로 하는 비선무의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이다.

“도가는 몸을 정밀하게 다스리며 아끼는 반면에 병가는 살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몸이 망가져도 우선 급한 기술 위주입니다. 도가는 건강 위주며 몸이 일종의 환경입니다. 그래서 도가의 무술과 병가의 무술이 다른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살상을 위한 냉병기가 필요 없는 때에 건강호신술은 도가의 무예가 바람직하고, 또한 수준도 높습니다. 도가의 무예를 익히면 정밀한 기(氣)의 이동통로가 몸에 생깁니다. 또 몸을 다쳤을 때는 복원력도 매우 강합니다. 저는 한방 침을 맞으면 반응이 무척 빠릅니다. 그런 점에서 도가의 무예는 지독할 정도로 과학적이지요. 흔히 도가라고 하면 무위자연이라고 해서 신선술과 같은 것을 떠올리는데, 도리어 과학적입니다.”

그가 짠 비선무의 커리큘럼은 매우 실용적이면서도 다양하다. 비선무는 결국 십팔기 무예에 북창 선생의 전통 도인역근법인 오금희, 불교의 천태대사 지관좌선법, 그리고 해범 선생의 역근법과 도인법 등 무예와 도불(道佛)이 망라된 것이 특징이다.

몸풀기, 기본자세, 기본발차기, 상체수련, 응용발차기, 낙법, 기본권법, 반뢰권(해범 선생 창안), 중급권법, 고급권법, 초급대련, 중급대련, 고급대련, 도법, 권법, 장봉, 중봉, 북창 선생 용호비결의 오금희, 내공 수련, 좌선법, 108배 등으로 구성된다. 이것만 제대로 익히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무예인이 된다.

몸풀기에는 정수리 돌리기, 장운동, 압퇴 등으로 구성된다, 기본자세는 가식, 궁전식, 기마식, 허식, 독립식, 부퇴식, 일좌식, 좌반식 등 여덟 종류이다. 기본발차기는 앞차기, 회심퇴, 옆차기, 돌려차기, 발올리기 등 다섯 종류이다. 상체 수련은 권추, 반주, 2인수련 등으로 구성됐다. 응용발차기는 발등치기·외파각·내파각·소퇴·이기각·선풍각·연환퇴, 낙법에는 고양이낙법(구르기)이 있고, 기본권법에는 1로에서부터 8로까지, 중급권법에는 호권·현각권·개산권(소림간가권), 고급권법에는 웅주포가권·후권·맹호권, 초급대련에는 권추대련·철형대련·기각대련, 중급대련에는 삼권대련·삼권권추대련·장권대련, 고급대련에는 강기대련이 있다. 도법에는 육로도법, 제독검, 본국검이 있다. 검법에는 격자격세·조선검법 24세, 장봉에는 1로에서 3로까지, 오금희에는 호랑이·곰·원숭이·사슴·학 등 다섯 동물의 도인역근법이 들어 있다. 내공수련에는 참공(마보참장공)·내장세(인도법)·외용세(도인법), 좌선법에는 조신·조식·조심·좌선전후 몸풀기 등으로 구성됐다. 108배로 모두 끝난다.

“비선무의 비(飛)자에는 날다, 높다, 뛰어나다 등의 뜻이 있어요. 선(禪)과 무(武)가 균형 있게 스며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무문 스님은 오랜 숙고 끝에 십팔기에서 정수를 뽑고, 나름대로 각종 수련의 전통을 불가에 맞게 개편하였다.

“진정한 무예는 나이가 들수록 강해집니다.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체육과는 다릅니다. 체육은 나이가 들어 체력이 저하되면 후퇴하지만 무예는 그렇지 않습니다. 40대가 20대를 이기고, 60대가 40대를 이깁니다. 무예인은 숙달된 경력(勁力)을 쌓아가는 자들이기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우리 일행은 스님을 졸라서 주지실 마당에서 잠시 그의 봉술을 보기로 했다.

“절의 크고 작은 불사로 인해 그동안 수련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오셨기에 한 번 해보기는 하겠습니다.”

붕- 붕-. 묵직한 물체가 청량한 공기를 가르는 동안 스님은 마치 한 마리 봉황새처럼 마당을 돌았다. 춤추듯이 사방을 휘젓고 돈다. 먼발치에서 보면 아마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봉의 움직임만 보일 것이다. 원을 그리면서 휘감아 돌던 봉이 훌쩍 크게 한 번 도약하더니 맹렬하게 땅을 내리친다. 쩡-. 맨땅에서 파열음이 솟는다. 화염에 그슬린 고송 아래에서 펼치는 봉술은 이내 기운생동으로 사방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오랜만에 해서인지, 호흡과 동작이 제대로 리듬을 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숨이 차서 힘드네요.” 스님은 계면쩍은 듯 슬쩍 미소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동작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특히 그의 비공(飛功)은 허공에서 한참 유지될 정도이다.

“네덜란드 영춘권 도장에 갔을 때입니다. 최복규 십팔기 무예도반이 현지에서 십팔기를 지도하고 있었어요. 처음에 저는 구경만 했지요. 그러다가 주위의 권고도 있고 해서 봉술시범을 보였더니 그곳 무술인들의 대접이 달라지더라고요. 봉술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봉술과 권법은 예부터 스님들이 즐겼다. 소림사의 권법 하면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만, 십팔기의 봉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십팔기야말로 당시 한중일의 무예를 종합 정리한 동아시아의 문화적 재통합이었기 때문이다. 살생을 금하는 절집에서는 봉술이야말로 건신(建身)과 호신(護身)을 위해 허용된 유일한 무예이다.

그는 특히 스님들의 선병(禪病) 치료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도 그것을 주제로 잡을 예정이다. 이미 여러 차례 관련 논문을 써오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대각사상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대각사상(大覺思想)’ 논문집에 ‘천태지자대사의 전적에 나타난 선병 치료에 관한 소고’라는 최근(2005년)의 논문을 보여준다.

“간화선에선 화두 공부는 내려왔지만 공부를 하는 동안 스님들의 건강 유지를 위한 비방은 전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는 십팔기를 익힌 것이 불가에서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결국 그는 문무겸전에 도불겸전인 셈이다.

“출가해서는 수행의 방편으로 틈틈이 몸을 놀리는 데에 그쳤습니다만 불가와 도가의 수련법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도가의 호흡법과 양생법은 불가의 참선, 좌선법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수양을 통해 도를 깨우치는 것도 같습니다.”

참선을 하다보면 올바른 수행법을 몰라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선병이라 한다. 스님은 군복무 시절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은 적이 있다. 의가사 제대 판정을 받았지만 끝까지 복무를 마쳤다. 도가의 양생법으로 인대를 치료한 때문이었다.

무문 스님이 즐기는 권법은 맹호권(猛虎拳)이다. 맹호권은 도가 문중에서 전해지는 오령권(五靈拳) 중의 하나인데, 힘이 넘치고 활발하며 도약이 비교적 많다. 권(拳)을 펼치는 스님의 신법(身法)은 공중에 몸을 날려 연이어 차내는 발차기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 발차기는 일품이다. 무림고수들의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비각(飛脚)이다.

“몸의 공부에는 끝이 없습니다. 평생을 배우고 연마하며 공들여야 합니다. 출가한 몸으로 기예를 닦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를 깨뜨리기 위함이지요. 십팔기는 꼭 간화선과 같습니다. 진도가 나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활연대오(豁然大悟)합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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