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동화의 나라' 덴마크서 만난 닐손씨와 그의 한국인 딸

관련이슈 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입력 : 2009-01-16 01:46:47 수정 : 2009-01-16 01:46:4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동심의 천국서 마주친 고아수출국의 아픈 현실
◇티볼리 공원을 산책 중인 가족의 모습. 커다란 유모차가 매우 인상적이다.
덴마크는 북유럽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나라다. 큰 키에 붉은 빛이 도는 하얀 피부, 금발머리에 파란 눈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바이킹과 안데르센으로도 유명하다. 서유럽과는 다른 특별한 매력의 나라지만, 무엇보다 선진국의 첫 느낌과 이곳으로 입양된 한국인 입양아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

기차 시간이 남아 중앙역 바로 앞의 티볼리 공원에 갔을 때다. 1843년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이라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현대의 대규모 놀이공원에 너무 익숙해진 터라 티볼리는 작은 ‘산책공원’의 느낌만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북유럽 국가들만의 특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로 대형 유모차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거의 작은 차 수준이다. 흥미롭게도 공원에 아기를 데리고 나온 모든 부모들이 이 거대한 유모차를 끌고 다녔다.
◇코펜하겐 근처의 오덴세에는 안데르센 마을이 있다. 작고 앙증맞은 집들이 모여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작은 유모차만 보아 왔던 터라 처음에는 저렇게 큰 유모차를 어떻게 끌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선진국’의 기준 중 하나는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배려다. 그런 점에서 크고 튼튼한 유모차로 아이를 보호하고 이런 유모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이를 확인해 보고 싶어 주변을 유심히 살펴봤다. 모든 대중교통 수단에 이 유모차가 들어갈 만한 넉넉한 공간이 있었다. 버스들은 유모차가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낮게 설계되어 있었고, 운전사는 매우 천천히 안전하게 차를 몰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거대한 유모차가 버스를 오르내릴 때 주변 사람들이 익숙하게 도와주고, 버스 안에서 갓난아이가 울거나 칭얼거려도 인상을 쓰면서 바라보거나 훈계하는 사람이 없었다.
◇코펜하겐의 상징인 인어공주 동상은 항구의 공원에 자그마하게 세워져 있다. 뒤편에는 공장이 늘어서 있다.


요즘에야 우리나라에도 이런 버스와 지하철이 생겼지만, 한국의 엄마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항상 미안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중이다. 미혼일 때는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던 친구들이 결혼을 한 후에는 더 이상 공공장소에서 보이지 않고, 집을 방문해야만 편안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북유럽은 어린아이들을 편안히 길거리로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잘 마련해 두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사회적 구성원으로 배려해 주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고 오덴세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1등석 티켓을 가지고 있었지만 잠깐 타는 거라 2등석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차장이 티켓을 확인하더니 친절히 말을 건다. “1등석 자리가 있는데 왜 2등석에 앉아 계시는 거죠?” 잠시 뒤에 내릴 거라고 대답하니 지나가던 승무원에게 음료서비스를 부탁해 준다. (북유럽에서 1등석 티켓을 소지한 사람들은 음료와 간식 서비스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스웨덴은 감동의 연속이다. 얼마 뒤 차장 아저씨가 티켓 확인을 마쳤는지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자신을 ‘닐손’이라고 소개한다. 아저씨는 지갑 속의 사진 한 장을 꺼내더니 자신의 딸이라며 보여줬다. 사진 속의 아이는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입양해 왔단다. 아까 유레일패스에서 필자의 국적을 보고 말을 걸고 싶었다고 했다. 

딸은 10대 후반인데 요즘 들어 부쩍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관심을 갖고 알고 싶어한단다. 그저 호기심을 넘어 자신이 한국에서 버려져 이곳에 입양되어 왔다는 사실에 우울해한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딸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한국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오죽했으면 기차 안에서 만난 필자에게 부탁했을까 싶다.

이후에도 북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동양인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북유럽 부모를 종종 만날 수 있어 한국으로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 의하면(2007년) 우리나라에서 국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요청한다. 유럽국가로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등으로 보내진다. 그래서 머나먼 북유럽에서 동양인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국외 입양은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됐는데 그때야 전쟁 때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중국, 과테말라, 러시아에 이은 세계 4위의 고아 수출국이라니 놀랄 만한 일이다. 정부는 국내 입양을 장려하고 지원금 제도, 미혼에게도 입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기는 하다.

국외 입양은 높은 반면에 한국의 출산율은 일본이나 프랑스보다 낮다. 물론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출산을 회피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복지수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 또한 예비엄마로서 북유럽 국가들이 부럽기만 하다. 또 출산율은 낮지만 국외 입양이 많다는 점에서 혈연중심 가족주의의 영향력이 거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복잡한 문제를 떠나 닐슨씨의 한국인 딸이 ‘선진국’의 좋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조국’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게 자꾸 뭔가 체한 것처럼 가슴 한쪽이 결린다. 우리 핏줄에 대한 책임감을 모두가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

여행작가 ( www.prettynim.com )

>>코펜하겐(Copenhagen)

덴마크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로 북유럽의 관문역할을 한다. ‘북구의 파리’로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로 디자인과 패션으로 유명하다. 볼 만한 곳으로는 크리스티안보리 궁전, 아름다운 니하운 운하, 코펜하겐의 상징인 인어공주 동상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태어나 활동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1시간30분 떨어진 오덴세에 가면 그가 태어난 집과 박물관 등을 볼 수 있다.

>>여행정보

코펜하겐까지 직항은 없다. 지난해 취항한 핀에어는 헬싱키를 경유해 코펜하겐으로 향하는데 세금과 유류할증료가 저렴해 북유럽 여행자에게 인기가 높다. 북유럽은 유럽에서도 물가가 매우 높은 곳으로 예산을 꼼꼼하게 세우는 게 좋다. 숙소는 유스호스텔이 가장 저렴하며 시설은 매우 깔끔한 편이다. 가격은 200DKK(덴마크 크로네, 1DKK=약 250원) 안팎이다. 식사는 높은 물가 때문에 주로 연어가 들어간 샌드위치나 간단한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데 50∼70DKK 정도 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
  • 블랙핑크 로제 '여신의 볼하트'
  • 루셈블 현진 '강렬한 카리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