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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터키 반, 라마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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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24 02:45:31 수정 : 2008-10-24 02: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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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 못 먹는 라마단 체험 값진 경험
◇반의 모스크, 터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하루에 5번 예배를 드린다.
>>터키 반(Van)=터키의 최동부, 이란 접경지역에 위치한 반은 바다와 같이 큰 반 호수를 둘러싼 도시 중에 가장 크다. 기원전 9세기에는 우라르투의 수도였으며 ‘투슈파’라고 불렸다. 터키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로, 쿠르트족이 대부분이며 길거리에 남자들만 보일 정도로 여성들의 활동이 거의 없다. 이곳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고대 우라르투의 유적지인 반 성(반 칼레시)과 오드아이 고양이다. 한쪽은 파란색, 다른 한쪽은 노란색 눈을 가진 오드아이 고양이는 반 대학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터키의 최동부에 위치한 반에 도착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절한 터키 현지인들로부터 버스터미널에서 호텔 문 앞까지 ‘도어 투 도어’ 서비스를 받았다. 호텔에 짐을 푸니 긴장이 풀렸는지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 근처 식당을 찾으니 라마단이라 문을 다 닫았단다. ‘아차, 라마단이 어제부터 시작되었다고 그랬지.’

이슬람에는 5대 의무가 있는데, 첫째는 샤하다(신앙고백), 둘째는 살라트(하루에 5번 기도), 셋째는 자카트(자선), 넷째는샤움(라마단 기간 금식), 다섯째는 하지(일생에 한번 메카의 카바 신전을 방문하는 것)다.

이 중 넷째에 속하는 라마단 동안에는 알라에게 경배하기 위해 금식과 하루 5번의 기도를 하며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 또 매일 20쪽씩 코란을 읽고(30일이면 600쪽의 코란을 모두 읽게 된다), 금주·금연을 하고, 성관계도 하지 않는단다. 어린이와 임신, 환자, 노인, 외국인은 제외되지만 외국인 여행자라고 해서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강제는 아니고 여행자들이 지켜야 할 예의다.

독일 여행자들이 빵과 발라 먹을 것을 사서 로비의 테이블에 펼쳐 놓자 호텔 주인이 지금은 라마단 기간이니 방에 올라가서 먹으라고 한다. “오늘 너무 고생했더니 차가운 빵은 먹고 싶지 않아요. 따뜻한 음식을 구할 순 없을까요?” 간곡히 부탁했더니 호텔 주인은 “라마준(터키식 피자)은배달될 겁니다” 하더니 바깥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 조금 뒤에 종이에 싸인 물체가 배달돼 왔고 돈을 주려고 손을 내밀자 배달한 사람이 흠칫 한다. 그리고는 필자의 손바닥 아래로 한 뺨을 내려 손바닥을 편다. ‘돈을 떨어뜨려 달라는 건가요?’ 제스처로 물었더니 그렇단다.

우스운 팬터마임이 시작됐다. 필자는 동전을 한 개씩 떨어뜨리고, 배달 직원은 손바닥으로 한 개씩 받는다. 동전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손을 비틀고 애쓰는 표정이 웃겨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곧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해서 손을 씻었기 때문이란다.

하루에 5번, 예배를 드리기 전엔 항상 비누로 의식에 맞게 씻어야 하는데 씻은 후 이성과 신체 접촉을 하면 다시 씻어야 하기 때문에 필자에게 그렇게 돈을 받았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까 호텔 주인이 돈을 받을 때도 테이블 위에 돈을 두라고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톡톡 쳤던 기억이 났다. “아, 그런 거군요. 그리고, 미안해요. 음식 냄새를 피워서. 얼른 올라갈게요.” 방으로 올라가 순식간에 음식을 해치웠다.
◇호텔에 도착한 첫날 라마준을 배달해 준 남자(왼쪽). 라마단 기간 금식을 하면 공짜 저녁을 주겠다며 필자의 도전정신을 부추긴 호텔 주인 아저씨.

저녁시간이 되자 거리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서둘러 가게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린다. 후다닥∼ 차에 타더니 급하게 출발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거의 달리는 수준이다. 빵집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마치 전쟁이 난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 오늘 본 라마단 풍경에 대해 말하니 호텔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

“파티마(필자의 무슬림 이름), 당신의 이름은 무하마드의 딸 이름이에요. 우리 무슬림들은 라마단 동안 배가 고프지 않답니다. 마시고 싶지도, 먹고 싶지도 않아요.” “정말 흥미로운걸요. 정말 배가 고프지 않단 말이죠?” “정말이랍니다. 대신 저녁 때는 가족들과 모여 한상 가득 음식을 차려 먹어요. 당신이 만약 우리 무슬림처럼 라마단을 할 수 있다면 제가 매일 저녁을 공짜로 대접해 드릴게요. 어때요?”
 
호텔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무슬림만이 하는 라마단을 네가 과연 할 수 있겠어?’ 하는 눈빛을 보냈다. 솔깃한 제의다. 공짜밥이라 이거지…. “당장 내일부터 하죠!”

라마단 체험 첫 날 새벽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해가 뜨기 전 예배를 드리고 밥을 먹는 시간이다. 곳곳에서 작은 카펫을 깔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보이고, 그 사이를 지나 조용히 로비로 내려갔다. 새벽 3시 반. 빵에 꿀을 찍어 차와 함께 먹었다. 그리고 4시에 다시 취침. 다시, 일어나 보니 12시다. 이제 6시간만 견디면 저녁을 먹겠군. 호텔 로비에 앉아 직원들과 수다를 떨며 밥시간을 기다리는데 머리가 아프다.

“오늘이 첫날이라 그래요. 하지만, 이제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지죠.” 

음식은 그렇다 치더라도 물까지 못 먹는 건 너무 심한 것 같다. 입술이 마르는 건 그렇다 쳐도 머리가 너무 아프다. 방으로 돌아와 누워 있다가 다시 로비로 내려 왔더니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함께 거들었다. 잠시 뒤, 해가 짐을 알리는 소리가 나고 호텔 식구들과 함께 알라에게 기도를 한 뒤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장난처럼 시작한 라마단 체험 내기는 4일 동안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할 수 있겠어?’ 하던 호텔 주인의 눈빛이 점점 신뢰와 사랑으로 바뀌어갔다. 당신은 외국인이니 이제는 먹어도 된다며 차츰 걱정까지 해줄 정도였다.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라마단이었지만 무슬림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어서 정말 뜻 깊었다. 무엇보다 필자에게 ‘좋은 사람’이라며 꼭 다시 와서 다음엔 호텔이 아닌 자기 집에 묵고, 한국에 돌아가면 코란을 읽고 무슬림이 되어 터키의 무슬림과 결혼하라는 소리를 들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터키의 이스탄불로 가는 직항으로는 대한항공과 터키항공이 있다. 반은 이스탄불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항공을 이용하는 것인데, 국내선(터키항공)이 저렴하다. 이스탄불에서 반까지 2시간10분이 소요된다. 터키 동부의 물가는 이스탄불의 반 정도로 저렴하다. 호텔은 10∼20리라(1YTL 약 880원) 정도에 구할 수 있으며, 대중 식당의 식사요금은 5∼10리라 정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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