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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Myanmar Bagan 미얀마 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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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09 17:59:14 수정 : 2008-10-09 17: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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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수 천기의 황금불탑, 아이들 삶의 무게 덜어주길
여름이 끝나갈 무렵, 새로운 여행지를 물색하던 끝에 미얀마에 가기로 했다. 사람 좋고, 물가 싸고, 여행자들도 별로 없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이란다. 정정이 불안하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이미 내 마음은 정해졌다.

◇슈웨산도 파고다(Shwe-san-daw Paya). 탑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불탑으로, 석양 명소로도 유명하다.

방콕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에서 비자를 신청하며 지도나 안내책자를 부탁했더니 양곤, 만달레이, 바간에 대한 얇은 책자를 내놓는다. 슬렁슬렁 넘기는 도중 “와아∼”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도시가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바간(Bagan)이다. 해뜰 무렵인지 해질녘인지 어슴푸레한 하늘 아래로 셀 수 없는 황금색 불탑이 보였다. 4000여기의 불탑이 있는 곳이란다. 
 
◇해질 무렵 바간의 지평선은 뾰족한 불탑들의 실루엣으로 뒤덮인다.

만달레이에서 낡은 버스를 8시간쯤 타고 도착한 바간은 여행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었다. 첫날은 마을 분위기를 익히며 푹 쉬고, 다음날 자전거를 빌렸다.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모자를 눌러쓰고 불탑이 세워진 곳으로 달렸다.

처음 도착한 곳은 마을 근처의 슈웨지곤 파고다(불탑). 그런데 파고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전거 주차 장소를 친절히 알려주던 아줌마 두 명이 조그만 기념품을 공짜라며 옷에 달아준다. 필자의 팔을 끌더니 상점 앞에 목욕탕 의자를 놓는다. 그곳에 앉은 후 그저 찬찬히 보기만 하란다. ‘이 정도 도와주는 것쯤이야!’, ‘오늘은 100달러어치를 팔게 될 것’이라고 기도도 해줬다. 그랬더니 오늘 개시를 해주면 매우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주겠단다. 이제 물건을 봤으니 그냥 가겠다고 했더니 이번엔 옆 가게 아주머니가 팔을 잡는다. 이렇게 세 번을 당하니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못 참겠다. “저는 파고다를 보러왔지 기념품을 보러온 게 아니거든요?” 머리가 아파왔다. 파고다 안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졸졸 쫓아다니며 엽서와 기념품을 사란다. 무시하고 갔더니 이번에는 파고다를 설명해 주며 돈을 요구한다.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간 두 번째 파고다도, 세 번째 파고다도 모두 마찬가지다. 파고다 주변의 아이들이 도저히 놓아주질 않는다. 그러다 일몰로 유명한 슈웨산도 파고다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대여섯 아이들이 따라왔고, 봉봉(초콜릿)’을 달라느니, 그림을 사 달라느니 하는 끈질긴 호객행위가 시작됐다. 그중에 계속 웃으며 말하는 특이한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 하면 비켜 주고, 걷는 틈을 타 설명도 해 준다. 이전에 파고다에서 사람들이 귀찮게 했냐며 자기는 그러지 않겠다고 한다. 엽서를 안 사도 좋다며 유적지를 설명해 주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똑똑한 14살 아가씨인 체리

“내 이름은 체리예요. 14살이죠. 작년에는 비즈니스가 괜찮아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하지만 가을 이후에 여행자들이 뚝 끊기면서 (지난해 승려들의 민주화운동으로 수십명의 미얀마인들이 죽고 일본인 기자가 사망하며 여행자들이 급감했다.) 요즘은 살기가 무척 힘들어요. 그래서 지난해에는 학교를 갔었는데 올해는 못 갔어요.” “얼마가 있어야 학교에 갈 수 있는데?” “1년에 학교에 내는 돈이 15달러, 버스비 등 이것저것 합치면 75달러예요. 원래 저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는데 이곳에 여행왔던 한 오스트리아인이 제게 학교 갈 돈을 매년 줬어요. 처음엔 왜 가야 하나 싶었는데, 학교에 다닌 후로는 제가 엄마에게 가겠다고 졸랐죠.” “그 아저씨가 지금은 후원해 주지 않니?” “그 분은 돌아가셨어요. 지금은 비즈니스가 잘 안 돼서 학교에 못 가게 되었지만 내년에는 꼭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얀마에서는 10인 가족이 한 끼를 먹는 쌀값이 500차트(400원 정도)예요. 물론 부자들은 2000차트 하는 쌀을 먹죠. 저희는 500차트가 드는데 그 돈을 벌기 위해 엽서를 팔아요. 조심해요! 거긴 태양 때문에 발이 뜨거워요.”
◇엽서를 팔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어린아이.

체리는 똑똑한 아이였다. 체리를 후원했다던 오스트리아인이 이해가 됐다. 1년에 100달러로 이 빛나는 아이를 1년간 학교에 보낼 수 있다면 1000달러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일 테니.

“전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해요. 프랑스어도, 한국어도 조금 하죠. 열심히 공부해서 이곳에 여행 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아 참, 꼭대기로 올라가지 말아요. 거긴 사람들이 많아 너무 시끄러워요. 이곳에서도 충분히 잘 볼 수 있어요.”

“외국 친구들을 만나고 싶으면 여행을 가지 그러니?” “아아∼ 저는 아무래도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돈이 없거든요. 그리고 미얀마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기 힘들어요. 말레이시아에 취업하면 나갈 수 있다고 하던데….” “스튜어디어스는 어때? 돈도 벌고 외국도 다닐 수 있는데?” “아! 그럼 저는 스튜어디스가 될래요! 열심히 공부해서!” 해질녘 파고다를 배경으로 체리는 환하게 웃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었더니 사진을 보내 달라며 ‘슈웨산도 파고다 옆’이라는 주소를 적어줬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필자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자꾸 체리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체리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여행작가

 

>> 미얀마 바간은

미얀마의 둘째 도시인 만달레이(Mandalay)에서 남서쪽으로 193㎞ 떨어져 있다. 아냐라타(Anawrahta) 왕에 의해 건설된 고대 미얀마의 수도로, 중국과 인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바간 왕조의 황금기였던 11세기에 수많은 불탑들이 건설되었는데, 오늘날까지 4000여기가 세워졌다. 1975년 지진 이후 많은 불탑들이 훼손되어 현재는 2500기 정도가 남아 있다. 1090년에 만들어진 네 개의 거대한 부처상이 있는 아난다 사원(Ananda Temple), 12세기에 만들어졌고 바간에서 가장 높은(66m) 타비뉴 사원(Thatbyinnu Temple), 선셋 포인트로 유명한 슈웨산도 파고다(Shwe-san-daw Paya) 등이 유명하다.

>> 여행정보

미얀마 양곤까지 직항은 없고, 한 차례 경유하는 타이항공과 싱가포르항공이 있다. 양곤에서 바간까지는 국내선이나 버스를 이용한다. 미얀마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현금카드 및 신용카드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달러를 가져가 환전하는 것이 좋다. 10달러당 1만2000∼1만3000차트에 환전할 수 있다. 저렴한 호텔 요금은 5∼15달러, 식사는 2000∼3000차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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