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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호는 “‘갬블러’는 나를 일으켜 주는 작품”이라며 “관객이 보내는 박수가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종덕 기자 |
뮤지컬 ‘갬블러’로 다시 무대에 선 허준호는 인터뷰 내내 기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유료 객석 점유율이 85%에 이른다고 하더라”면서 “공연 전에는 솔직히 ‘50∼60% 이상은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만석에 가까운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허준호는 ‘갬블러’(LG아트센터·8월3일까지)에서 카지노에 첫발을 내디딘 젊은이를 파멸로 이끄는 카지노 보스 역을 맡아 강렬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쥐었다 놓았다. ‘허준호 없는 갬블러는 생각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갬블러’에 대한 평가는 일본에서 더 후했다. ‘갬블러’는 2002년과 2005년 일본으로 수출돼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한류의 원조’다. 초연 당시 ‘갬블러’를 반기지 않던 국내 관객은 일본에서 성공한 것을 본 후 달라진 반응을 보였다. 허준호는 “사실 이번에 무대에 서면서 큰 흥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일본에서의 성공만큼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속내를 비쳤다.
‘갬블러’는 푸시킨의 단편소설 ‘스페이드 여왕’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팝 그룹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작곡자이자 리더인 에릭 울프슨이 음악과 극본을 구성한 작품. 카지노의 인간 군상을 통해 욕망과 파멸, 사랑과 배신 등을 그려낸다. 허준호는 1999년 초연 이래 줄곧 카지노 보스를 맡아왔다.
그는 “나이가 드니 지금은 무대에 서고 난 후 힘이 많이 든다”면서도 “작품에 거듭 출연하다 보니 그간 보지 못했던 비밀이 하나 둘 풀리고, 해석하지 못했던 장면을 해석해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카지노 보스는 현실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불쌍한 인간이에요. 행복이란 것을 몰라요. 돈을 갖기 위해 세상과 차단된 채 모든 것을 희생하죠. 인간적인 삶이란 그에게 없어요. 강해 보이지만, 결국 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허준호가 상의를 젖히며 단단한 상체를 드러낼 때 관객은 탄성을 내지른다. 그는 카지노 보스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1년간 선탠을 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카지노는 창문도 없고 시계도 없는 곳이에요. 햇빛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점을 보여주기 위해 허연 피부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허준호에게 ‘갬블러’는 각별하다. 그가 “침체돼 있을 때 일어나게 해주는 작품”이다. 지난해 공연제작사 장강엔터테인먼트를 차리고 만든 창작뮤지컬 ‘해어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던 터였다.
“‘갬블러’를 처음 할 때는 감격스러웠어요. 내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아이 인 더 스카이’를 부른다니…. 이 작품을 통해 호흡과 연기력 면에서도 많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허준호는 ‘라이프’ ‘하드락 카페’ ‘사운드 오브 뮤직’ ‘마리아 마리아’ ‘캣츠’ 등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뮤지컬에는 23세 때 ‘방황하는 별들’의 코러스(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로 데뷔했다. 서울예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그는 단단한 몸과 뛰어난 춤솜씨 덕분에 코러스로서는 인기가 좋았지만 배역은 없었다. 낮게 깔리는 힘있는 노래에 감동받았던 터라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배역을 안 주니까 오기로 노래를 시작했어요. 소리지르고, 따라 부르고, 기타 듣고, 다른 배우들이 숨을 언제 쉬나 관찰하고…. 연습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전 아직도 악보를 못 봐요. 그래서 시창도 못해요. 멜로디를 듣고 반복해서 연습하죠.”
공연 제작자로의 변신은 오래전부터 꿈꿔온 일이다.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에 출연하다 보니 좀더 우리 정서에 맞는 창작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남들은 ‘해어화’ 제작이 실패로 끝났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창작 과정부터 무대에 올리기까지 어려움도 아쉬움도 많았고 혹평도 있었지만 저는 오로지 관객만을 믿습니다. 오신 분 중에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잖아요. 뮤지컬은 ‘이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보죠. 2, 3년 후를 내다보고 시작했습니다. ‘해어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연기자로 데뷔한 지 20여년이 흘렀다.
“어느 날 보니 나는 연기 외에는 아는 게 없더라고요. 심지어 주식투자도 할 줄 몰라요. 나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사람이에요. 나는 이렇게 살라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 연기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연습’밖에 없는 것 같아요. 복습하고 예습하고….”
이보연 기자 bya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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