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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발레, 우아한 춤사위 대신 ‘심리 드라마’를 입다

입력 : 2012-07-11 13:56:28 수정 : 2012-07-11 13: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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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14일까지 관객만나
종합예술인 발레의 진수 선보이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중 로미오 역 이현준, 줄리엣 역 안지은씨

패리스 백작과 사랑 없는 결혼을 강요받은 줄리엣은, 빠른 템포로 변주되어 흐르는 음악 속에서 미동도 않고 앉아 있다. 패리스 앞에선 자꾸 뒷걸음치거나 뻣뻣한 몸짓으로 2인무를 춘다. 동작과 동작 사이가 매끄럽게 연결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2인무와 대조적이다.  ‘그래, 내 몸은 가져가라 하지만 절대 마음만은 주지 않겠다’는 여인의 내면이 읽혀진다. 로렌스 신부가 건넨 약을 먹어 온 몸이 축 늘어져 있는 줄리엣은 로미오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요동치며 사랑의 슬픔을 전달한다. 사랑의 광기는 여인의 늘어진 팔 다리 그 끝에서 더욱 진하게 피어 올랐다. 극적인 효과는 적중했다.

지난 7일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오른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관객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조율한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클래식 발레하면 당연히 춤으로 감정표현을 하기 마련인데, 맥밀란은 절제와 격정을 교차시켜 감정 연기에 비중을 뒀다. 로미오의 죽음을 알고 오열과 절망 속에 죽음을 택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죽음과 광기의 연금술사’다운 안무가 맥밀란의 심리가 읽혀졌다. 그 결과 삶과 죽음을 함께 한 ‘영원 불멸한 사랑’을 나눈 두 남녀의 사랑에 탄성이 터져나왔다. 

맥밀란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이 1983년에 한-영 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후 3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올랐다. 무대 디자이너 폴 앤드류스(Paul Andrews)가 새롭게 디자인 한 영국 버밍험 로열발레(Birmingham Royal Ballet)의 무대 장치와 의상을 그대로 공수해 온 점도 주목할 점. 16세기 이탈리아를 그대로 재현한 듯 고전미가 가득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중 1막 베로나 광장

줄리엣(안지은)은 14세 풋풋한 소녀에서 첫사랑에 빠진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해갔다. 로미오(이현준)는 불꽃처럼 뜨거웠고 로맨틱했다. 로미오의 어깨 위로 날아오르는 줄리엣은 사랑의 설렘과 그 순간만 허락된 사랑의 비극성을 격정적으로 전달시켰다. 바닥에서 발을 떼지 않고 수직으로 발을 세운 채 밀고 당기기를 하는 남녀, 통통 바닥을 뛰어다니거나 빙그르르 도는 두 남녀의 모습, 프로피에코프의 음악에 맞춰 기나긴 키스를 나누는 장면 등은 눈 뗄 수 없이 흥미진진하고 짜릿했다. 특히, 무릎을 구부린 채 앉은 로미오가 줄리엣과 함께 선보이는 1막의 파드되는 압권이다. 이후 발코니에 선 두 남녀가 상대와 손이 닿을 듯 말듯 애절한 동작을 선보인다. 여운가득한 1막의 피날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이렇게 절묘하게 마임이 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원래 춤과 음악이 한 몸인 듯 감정 이완의 타이밍이 치밀하다. 연극적인 구조로 극적인 힘을 지닌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극의 완성에 한 몫 한 것이다. 머큐쇼의 죽음에 덧입혀진 희극적 몸짓, 유모의 손등에 키스를 날리거나 로잘린의 구애에 절대 미워할 수 없게 거절하는 로미오의 매력도 일품이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중 캐플릿가의 가면무도회 장면

베로나 광장, 캐플릿가의 궁성 밖, 줄리엣의 발코니까지 다채롭게 바뀌는 무대, '만돌린 춤'등으로 화려한 이미지를 담아냈다. 티볼트(진헌재), 머큐쇼, 벤볼리오(후왕젠)가 선보이는 ‘챙 챙’ 부딪치는 칼싸움 장면도 볼거리다. 티볼트의 죽음에 절규하는 마담 캐퓰릿(강예나)의 표정엔 진한 매력이 가득하다.

폴 고넬 리가 지휘한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8일 공연에서 금관파트가 불안한 호흡을 보인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프로피코예프의 음악은 극의 밀도를 높이며 비극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연예인 정우성·이정재가 관람해 화제가 되기도 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14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된다. 엄재용·황혜민 커플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은 12일과 14일 두 차례 만나볼 수 있다.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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