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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지나다니는 ‘완벽한 배우’ 김대종의 탄생

입력 : 2012-02-06 08:57:11 수정 : 2012-02-06 08: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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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극 ‘모범생들’ 배우 김대종
“예술가요? NO, 공동체의 마지막 짐을 지고 가는 배우 인걸요.”

인터뷰 중 환하게 웃는 김대종 배우 ⓒ 정다훈 기자

이 남자의 연기 인생, 생각보다 팍팍했다. 외모도 재능인 시대인지라 20대인 그에게 주어진 역은 40대 아저씨 역 혹은 앙상블 이었다. 현재의 아내를 만난 2006년 이후 조금씩 희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대가 갑자기 호의적으로 돌아 선 건지, 세상이 그의 진가를 하나 둘 알아봐주기 시작한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이후로 그의 연기 인생에 웃을 일이 많아졌다. 그에게 연기는 ‘삶’ 자체였다. 부부 싸움도 ‘너 지금 연기하냐?’라고 말하며 싸울 정도이니 말이다.

연극 ‘모범생들’(2월 3일~ 4월 29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의 ‘종태’역으로 다시 돌아온 배우 김대종(33)을 만났다. 인터뷰는 흡사 소개팅 자리처럼 다소 어색하게 시작됐다.

“(명함을 건네받은 뒤 이름과 얼굴이 익숙한 듯) 어디서 만난 적 있죠?”(배우)
“없는데요. 무대에서 말고는”(기자)
“(좀처럼 질문을 던지지 않는 기자에게)대개 쑥쓰러워 하시내요. 꼭 소개팅 장소처럼(웃음)”(배우)
“('분명 나보다 어린 배우라고 알고 왔음에도 선배의 포스를 풍기내' 하는 놀라움이 앞서)‘웃긴 배우’라는 수식어가 많은데, 감춰진 ‘뭔가’가 있을 것 같아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어요.”(기자)

◆ 연극 ‘모범생들’ 안에 담긴 ‘김대종의 모범생 이야기’

2007년 초연된 지이선 작 김태형 연출의 연극 ‘모범생들’은 소위 ‘모범생’이라 불리는 명문 외고 3학년 학생들을 통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그 속에서 그들이 겪는 열등감과 강박관념을 세련되게 풀어낸 작품이다. 여기서 배우 김대종은 졸부집 아들이자 운동선수 출신 ‘종태’로 나온다. 무식하고 주먹 꾀나 쓰지만 가장 진정성 있는 남자이다.

김배우는 “‘모범생들’은 초연 당시 공연이 끝난 후 동료배우들의 어깨를 붙잡고 울었을 만큼 감회가 남다른 작품”이라고 말했다.

“창작지원금 1000만원으로 시작한 저예산 공연이에요. 학교 지하에서 힘들게 합을 맞춰보면서 연습했어요. 첫 공연이 올라가면, 객석에 앉지 않더라고 (배우들은) 피드팩이 오잖아요. 땀 흘려서 만들었던 결과물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는구나. 노력을 보상 받은 것 같아 다 큰 남자들이 울었어요. 이런 게 배우로서 살아가는 기분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결혼하고 맡은 첫 연극인데 마음도 몸도 치유 되는 느낌을 받아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그렇다면, 어수룩하지만 의리 있는 ‘종태’라는 캐릭터와 얼마나 비슷할까?

“제 안에 반장 ‘민영’을 제외한 ‘명준’ ‘수환’ ‘종태’가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참고로 연극 ‘모범생들’은 종태 외에 ‘내신 1등급이면 인생도 1등급이 될 수 있을 거란 신조를 가지고 있는 명준’,‘묻어가는 인생으로 말이 많은 게 특징인 수환’,‘명문가 아들이자 반장으로 명석한데 비열하기까지 한 민영’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김대종은 극중에 나오는 특목고는 아니지만 분당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다녔다. 모범생의 길을 밟아오던 그는, 엄청난 경쟁으로 힘들었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결국‘종태의 삶’을 살게 된다.

“강남 8학군에서 다 몰려들고 위장전입, 중학생 보충수업 열풍이 거세된 지역이었어요. 거기서 세상이 참 넓구나 하는 걸 깨달았죠. 초등학교 때 반장하던 전국의 잘하는 애들이 몰려들었으니 말이에요. 친척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들어가 첫 시험을 봤는데 반에서 20등이 넘었어요. 충격 좀 받았죠. 기억에 남는 건, 전교 26등까지 등수를 올려서 선생님이 집으로 직접 전화까지 해주셨는데, 아버지께 칭찬을 받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정한 기준(전교 10등)에 미치지 못했거든요. 정말 (공부 잘하는 걸)타고난 아이들이 있었어요. 결국 (공부하는)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

이후 김대종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배우가 되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다. 본인이 진짜 즐거워하는 일을 찾아간 것이다.

“집에는 과외한다고 거짓말하고 연기학원 등록을 했어요. 두 달 배우고 운좋게(한국예술종합학교)합격 했어요. ”

김대종은 ‘공부의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 이유, ‘치유’의 의미가 강한 ‘모범생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다 극명한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수 많은 LED판이 있다고 했을 때, 저는 그 중 하나의 램프에 불과한 거죠. 거기서 저 뿐 아니라 많은 램프들이 첫 번째로 불 들어오겠다고 발버둥치겠죠. 하지만 (LED판 감싸고 있는)유리벽이 깨지는 순간 결국 쓸모없는 전구가 되는거죠. 극중 인물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지만 이 아이들도 나와 다를 바 없다는 순간 이 찾아와요. 물론 불편하고 힘들어져요. 하지만 오히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받아들이다 보니 치유하게 되요. ”

인터뷰 하는 김대종 배우 ⓒ 정다훈 기자

◆ ‘포커페이스’ 엄마, 그리고 아들 김대종 이야기

김대종은 ‘모범생들’이란 연극이 대한민국에서 공립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 뭔가 공통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고 간결하게 정리했다. 학창시절 생각했던 신념 혹은 가치, 그 과정에서 받게 된 상처들이 계속 머릿 속을 맴돌게 하기 때문이다. 곧 ‘모범생들’ 첫 연습을 하면서 자신의 부모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전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라캉이 말한 ‘어린아이의 욕망은 부모(타자)의 욕망 속에서 형성된다.’와 의미가 통한다.

“김태형 연출가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어요.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대신 꿈꾼다’고 하죠. 저희 어머님은  어렸을 때 받은 상장을 아직도 모아놓고 있어요. 어린시절 어머니를 보면서 마음 아팠고 어머니가 하지 못한 걸 이뤄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성인이 돼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보니, 제 욕망의 주체는 뭘까, 어떤 부모가 되야할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구요. ”

처음엔 아들이 배우의 길을 가는 걸 반대했지만 지금은 아들이 나오는 공연을 꼬박꼬박 챙겨보는 김대종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연극 ‘밀당의 탄생’을 보러오신 날인데, 추정화 선배가 특이한 아줌마 한 분이 있다고 말하셨어요. 엄마가 뚱한 표정으로 코미디 연극을 보고 계셨거든요. 배우들은 한분이라도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관객이 있으면 신경이 쓰여요. 그런데, 그렇게 뚱하게 앉아있다 커튼콜 때는 너무도 열심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대요. ”

이 일화를 듣고 웃음이 나오는 것도 사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혹시 자식을 바라보는 애처로운 부모의 심정이 되어 그렇게 쳐다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저희 어머니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세요. 그 정도로 해서 웃기겠냐. 하는 비평의 시각이죠. 유머 코드가 남다르세요. 예전에 뮤지컬 ‘스팸어랏’ 할 때도 객석에서 무대로 불려나오신 적이 있는데,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자 전혀 생각못한 ‘남북통일’이라고 말하실 정도니까요. 그렇게 무대에 올라오면 대개는 자기 소원을 말하잖아요. ”

점차 김대종의 유머기술이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두 모자는 웃으면서도 실없이 웃는 게 아닌 다 생각하면서 미소 짓는 치밀한 개그맨이었다.

“어머니는 포커페이스(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마음의 동요를 나타내지 않는 얼굴)에 강하시죠. 전 원래 웃기는 사람이기 보다는 노력해야 웃기는 스타일이에요. 코미디를 100%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싫어하진 않지만 부담감은 있죠. 하지만 막상 관객들이 웃으면 짜릿함이 있어요.” 

인터뷰 하는 김대종 배우 ⓒ 정다훈 기자

◆ 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왔다 갔다하는 난 ‘완벽한 배우’

2005년 뮤지컬 ‘어쌔신’의 앙상블로 데뷔한 김대종은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오디션을 통과한 작품은 ‘스팸어랏’ 뿐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배우의 입장에서 볼 때 운이 따르지 않은 인생에 가깝다. 하지만, 2012년 현재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우 김대종이란 이름을 들먹였을 때 열명 중 여덟명은 ‘아 그 웃긴 배우’ 하면서 미소를 짓게 된다.

“요새가 저에게 참 우호적인 시기인 것 같아요.(웃음) 호의적으로 돌아선게 얼마 되지는 않았어요. 결혼하고 2~3년 됬으니까요. 운이 좋아서 계속 좋은 작품,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예전엔 나란 사람은 사전 정보 없이 보면 매력이 없는 인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목소리는 타고난 게 있을지도 몰라요. 오디션보다는 예전 제 작품을 보러 와 주신 관계자분, 저 배우 괜찮더라 하는 말을 듣고 캐스팅 된 경우가 많아요. 아. 난 작품으로 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그렇다면, 데뷔 초반 슬럼프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고 그런 배우들의 슬럼프 이야기가 아니다. 김배우는 자신만의 ‘완벽한 배우’론으로 이겨내게 된다.

“유명 배우들 사이에서 위축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저 사람과 나의 차이는 뭘까. 억하심정으로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주인공으로)데려가주지라는 생각도 했구요.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왔다갔다 하는데 아무도 못 알아봤어요. 다 어린 시절이었죠. 요새는 그걸 즐기고 있어요. 얼마 전엔 ‘밀당의 탄생’ 끝나고 지하철을 탔는데, (밀당의 탄생)연극 프로그램을 손에 든 채 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어요. 그런데 바로 눈 앞에 제가 서 있어도 못 알아보더군요. 그 순간 ‘이 작업 완벽하게 수행한 것 아닌가?’ ‘오늘도 난 완벽하게 해냈어’ 하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배우 김대종의 아내이자 또 다른 배우인 김선미씨가 출연한 연극 보고싶습니(2004년) 프로그램 내 사진 ⓒ 정다훈 기자

◆ 훈남(?) ‘교회오빠’가 여자친구를 인터셉트(가로채기)한 이야기 

배우 김대종 인생에 있어서 평생의 반려자 아내를 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배우 생활에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2006년, 행운의 여신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의 표현대로 김대종은 연극 ‘교회오빠’를 통해 여자친구를 인터셉트 해 온다. 그의 아내는 연극 ‘보고싶습니다’의 초연 지순 역으로 유명한 연극배우 김선미이다.

“선배 이동선 연출의 작품인 ‘교회오빠’에 제가 목소리만 출연하게 됐거든요. 그때 지금의 아내를 눈 여겨 봤죠. 저는 실제적으로 출연도 하지 않은 작품에 가서 훔쳐온거죠. 꼭 저보다 연기 잘하는 여자랑 결혼하고 싶었거든요. 배울 점이 있는 여자, 천방지축인 저를 꼼짝 못하게 할 여자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터셉트 해왔어요.”

두 아이의 엄마인 아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김대종의 눈빛은 절로 하트가 그려졌다. 물론 결혼은 생활인지라 싸움도 자주 한다고 전했다.

“오늘 대학로 나오기 전에 아침밥을 못 먹고 나왔는데, 아침밥도 안 챙겨줘서 기분이 그렇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난 (4세 1세 두 아이 때문에)하루종일 집에만 있는데 그게 서운하느냐. 그러더군요. 살아있는 반응을 하는 사람이에요. 배우답게 싸우죠. 화를 내는 모습도 우습고 재미있어요. 싸우면서도 서로 너 지금 연기하냐?라고 말하니까요.”

한동안 대학로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김선미 배우를 곧 아니 몇 년 뒤에는 볼 수 있을 듯 하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기자가 얼마 전 연극 프로그램북을 정리하던 중  2004년 ‘보고싶습니다’북을 발견해내곤 ‘김선미 이 배우는 지금 쯤 뭐하고 있을까?’ 생각했던 배우 중 한 사람이다는 점이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 사진을 첨부한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있겠지만(웃음)아내 홀로 연극무대 다시 나오려고 준비중이에요.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맡길 수 있는 나이만 되면요. 저는 아내랑 한 무대에도 서고 싶은데, 아내는 싫다고 하내요. 제가 집에서 의외로 잔소리가 많거든요. 그래서 공연할 때는 안 그런다고 해도 믿질 않내요.”

◆  요리하고 글 쓰며 사색하는 남자 김대종

김대종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수록 매혹적인 부분이 있었다. 노안에 얽힌 에피소드는 KBS2 개그콘서트의 ‘풀 하우스’가 오버랩 됐다. 특히 몸짓이 우락부락한 큰 아들(이승윤)이 엄마에게 아픈 부위를 내밀며 ‘호’ 해달라고 하자, 엄마(정경미)가 ‘아들 아니야. 넌 좀 그래’ 하는 대목이 연상됐다.

“최근엔 문혜원 누나와의 일화가 있내요. 뮤지컬 ‘폴링 포 이브’랑 ‘밀당의 탄생’ 두 작품을 같이 해서 서로 나이도 알고 친한 사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연습 하던 중 저에게 ‘오빠 에어콘 좀 꺼주라’ 이러는 거에요. 제가 놀라니까 너만 보면 오빠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안무하는 현정이 누나도 저에겐 쉽게 말을 놓지 못하겠다고 말했어요.”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외모만 놓고 볼 때 김대종은 남자다운 스포츠맨일 것 같다. 하지만 내면을 까보니 의외로 요리와 뜨개질 하는 걸 좋아하는 여성스러운 남자였다.

“저는 남자라면 으레 잘 할 만한 걸 못하는 것 같아요. 축구도 못하고 힘도 약해 팔씨름도 못해요. 조직폭력배 같이 생겼는데 뜨개질을 잘 하고 요리도 좋아하죠. 이러다 보니까 예전에는 ‘게이’ 소리도 들었을 정도에요.”

최근 김대종은 ‘밀당의 탄생’과 ‘모범생들’ 두 작품 연습이 한꺼번에 돌아가 다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 생각과 작품 생각 빼고 어떤 생각을 하냐고 물어보니 ‘사색’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찬찬히 들어보니 문학소년의 기질이 다분했다.

“집에서 대학로로 나가는 시간, 대학로에서 집으로 오는 귀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지하철에 앉아있는 사람들 보며, 저 사람은 무슨 일 하나 왔을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죠. 어느 날은 제 근처에 있던 나이 차가 꽤 있어보이는 남녀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어요. 그때부터 머릿 속에는 소설을 쓰는 거죠. 나이 때문에 주변에서 인정을 해주지 않았을 거다. 주변의 그런 시선 때문에 남자도 여자를 선뜻 감싸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20분간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행인지 몰랐던 다른 여자들이 목적지에 왔는지, 그 커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리는 거에요. 여기서 다른 사연을 첨가하게 되고...”

짧지만 흥미로운 일화였다. 그래서 극작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맘 먹고 쓰겠다 이런 거 보다는 그냥 끄적여보는 수준이에요. 올해는 쓰다가 중단한 작품들을 완성시켜야죠. 아내도 일단 제 작품 읽어보고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연극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그런 생각 한번 쯤 했을 것 같은데, 자신이 쓰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하는 것요. 우선 내 이야기가 올라가는 거니 좋죠. 배우로 무대에 오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문학소년 까진 아니더라도 책을 좋아했어요. 꼭 책 한권씩 읽고 잤으니까요. 그때 읽었던 명작들을 연극하면서 다시 꺼내보며 읽게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요.“

◆ 공동체의 마지막 짐을 지고 가는 역은 결국 배우

가끔 공연 스케줄이 없는 날, 배우 김대종은 지금까지 자신이 출연한 공연 프로그램 북을 주루룩 펼쳐놓고 감상에 젖는다고 했다. 공연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은 물론 이렇게 많은 역할들을 한 자신이 자랑스럽고 사진만 봐도 ‘짜릿 짜릿’ 해진다고 전했다. 이어 일반인과 가장 갭이 없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라고 밝혔다.

“제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제 자신이 딱딱해지는 것 같아요. 두 아이의 아빠인데, 명확한 생계유지 배우죠(웃음). 그리고 배우라는 일이 저 만을 위한 작업은 아니에요. 작가의 의견도 반영해야 하는 거고, 제가 끌어내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거고, 하고 싶은 거 있어도 조금 더 양보하다 보면 또 따른 걸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공동체의 마지막 짐을 지고 가는 건 결국 배우니까요.”

김배우는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을 하나 만들어내고 발현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장기나 바둑에서 몇 수를 두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듯, 배우도 사람에 대한 애정,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고민하며 표현하는 일이에요. (당사자)배우 일상, 같이하는 동료 배우의 일상, 관객의 일상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하나 만들어 내는 일인데 애정 없인 못하죠. 이론으론 설명할 수 없지만 이 모든 게 모여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아요.”

언변실력이 뛰어난 김대종은 배우 인생의 지표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인생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을 만나게 해준 이동신 선배 이야기에도 강점을 뒀다. 

“배우 인생은 질문으로 구성됐어요. 퀘스천의 어원이 문제를 지속해서 내 놓는 거라고 하죠. 내가 이 역할 하는게 맞는지, 내가 분석하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지금 이 정도로 하고 있는게 맞는지 등,  어찌보면 도  닦는 과정이죠. 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보면 답이 변해 있어요. 측량할 수 있는 척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깊이라고 말하기도 뭐해요. 존재가 없는 것 같다가도 또 다시 보면 뭔가가 존재해요. 그렇다고 분석할려고 보면 안되고요. 이 일이 즐거운 일인 건 분명해요. 그래서 놓지 못하는 거겠죠.”

그렇다면,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김대종은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냉정하게 말해 대한민국 사람 중 김대종이란 배우 공연을 챙겨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모범생들’ 공연을 찾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숫자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겠죠. 공연을 보고 난 뒤 그 사람에게 조그만 영향을 미쳤으면 된 거죠. 그런 거 있잖아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일상에서 공연 장면이 떠올라 공연 상황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잠시 생각하게 되는 것. 교훈을 주겠다는 의도보다는 공연 속 유머가 일상에 뭔가 영향을 미치는 거겠죠. ”

김대종의 2012년 목표는 ‘좀 더 우습게 대하는 사람이 되자’였다. 일상생활에서든 배우생활에서든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고자 함이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관객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임팩트를 제공하는 배우 김대종의 2012년을 주목해보자.

공연 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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