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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자랑스러워 하는 얼굴, 야마시타 토모히사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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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3-03 08:52:40 수정 : 2011-03-03 08: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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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강의 미모를 자랑하는 아이돌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공식적으로 한국에 왔다. 엠카운트 다운 무대에 서기 위해서였다. 비공식 방문 당시 정보를 입수한 팬들의 기습적이고 과감하며 과도한 애정표현으로 김포공항 출국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을 정도로 시달렸던, 그만큼 한국에도 많은 팬들을 지닌 그가 드디어 한국에 온 것이다.

야마시타 토모히사에서 야마삐가 되기까지

본명보다는 귀여운 별명으로 부르기를 좋아하는 일본에서 '야마삐'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야마시타 토모히사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한 스타이다. 특히 미소년 아이돌들을 전문적으로 배출해온 쟈니즈의 고정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활동을 해온 그가 유명하고, 인기 있는 이유는 아주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를 고르자면 그가 너무나, 굉장한 미모를 지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얼굴은 단순히 예쁘장하거나 잘 생겼다는 차원을 넘어 '아름답다'거나 '완벽하다'는 표현이 걸림 없이 어울릴 정도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단지 타고난 얼굴 때문이거나,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린 시절부터 휘황찬란한 미모를 자랑하던 그가 연예계에 데뷔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캐스팅이 아니라 자기 의지였다. 화사한 미모와 달리 어린 시절,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초등학교 때 자신보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TV에서 활약을 하는 타키자와 히데아키(타키 앤 츠바사)를 보고 스스로 쟈니즈에 지원했다. 당시 타키자와 히데아키는 쟈니즈 주니어라고 불리던 데뷔하지 않은 '연습생'들을 이끌며 TV를 종횡무진 누비며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야마시타 토모히사는 쟈니즈에 들어간 이후 곧 자신이 동경하던 타키자와 히데아키처럼 TV에 나오게 된다. 당시 주니어의 리더로써 쟈니즈의 연습생들을 일본을 비롯한 전 아시아에 '미소년 군단'으로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타키자와 히데아키는 단정한 미모를 지닌 그를 눈 여겨 보았다. 홀어머니와 여동생 사이에서 자란 야마시타 토모히사는 '쟈니즈'라는 남자들로만 구성된, 또래의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많은 곳에서 든든한 리더 역할을 하던 타키자와 히데아키를 몹시 따르며 의지했다. 그 한 예로 타키자와 히데아키가 주니어를 졸업하며 팬들에게 정식 데뷔를 알린 콘서트에서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정신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도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일화이다.

몇 년 후, 타키자와 히데아키는 성년이 되어 <타키 앤 츠바사>로 정식 데뷔를 할 때 야마시타 토모히사에게 '주니어 리더'라는 자리를 넘겨주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쟈니즈에서 타키자와는 주니어 최초의 리더였고, 야마시타는 정식으로 리더 자리를 물려받은 유일한 후배였다. '야마삐'라는 애칭 또한 타키자와 히데아키가 지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쟈니즈 주니어들은 콘서트를 비롯한 선배들의 무대에서 춤을 추며 무대 경험을 쌓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그 시절 야마시타는 핑크색 의상을 주로 입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야마시타가 핑크색이 아닌 다른 무대 의상을 입자 담당자가 '야마시타는 핑크야!'라고 몇 번이나 외치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한 타키자와 히데아키가 '야마시타 핑크!'라는 말을 줄여서 '야마피'로 부른 것이 '야마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팬들 사이에서는 '야마삐'라는 애칭 탄생 비화의 정설로 알려져 있었는데 얼마전 역시 선배인 SMAP가 진행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애칭이 생긴 연유를 묻자 주니어 시절 '카키피(과자 이름)'라고 불렸던 것이 계기였다고 하여 약간의 혼란을 주기도 했다. '야마시타 핑크'에서 비롯된 '야마삐'이던, 과자 이름 '카키피'로 불리다가 진화된 '야마삐'이던 주니어시절부터 그를 귀엽게 여기며 선배들이 놀리던 것에서 비롯된 것만은 확실하다. 주니어 시절 곧바로 주목을 받았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긴 연예활동에도 불구하고 낯가림이 심하고 소속사 내에서조차 은근히 좁은 인간관계를 가진 그를 '놀렸던' 선배나 동료들이 몇 명 되지 않았을 것이다. 타키자와 히데아키 정도 되는 선배가 아니라면 그를 스스럼없이 대하며 놀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니어의 리더에서 데뷔하기까지

 

정식으로 ‘주니어 리더’의 자리를 물려받긴 했지만 야마삐와 타키자와 히데아키가 가게 된 길은 전혀 달랐다. 데뷔하기 전부터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등에서 활약하며 빈틈없이 쟈니즈 주니어를 이끌던 타키자와 히데아키의 경우, 주니어를 완전히 졸업하고 <타키 앤 츠바사>로 데뷔를 한 것은 2002년, 그가 20살 성인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야마삐는 타키자와 히데아키가 데뷔를 한 이듬해 곧바로 <NEWS>의 멤버로 발탁되어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덩달아 확고부동한 자리처럼 보였던 '주니어 리더'의 개념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NEWS>는 오사카와 도쿄 두 지역의 주니어들을 모아서 만든 9명의 멤버로 구성된 그룹이었고, 그 중 가장 인지도가 높고 인기가 많았던 야마삐는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데뷔의 기쁨보다는 정식 데뷔라는 그리고 리더라는 자리의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다. 2003년 데뷔 당시, 핑크색이 들어간 반바지와 민소매 무대 의상을 그의 사진 대부분은 안스러울 정도로 말라있는 모습이다. <NEWS>가 결성된 후, 그는 다른 멤버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TV 앞이 아닐 때에는 철저히 혼자 있었다고 한다.

데뷔를 꿈꾸며 열심히 활동해온 많은 연습생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주목을 받으며 데뷔한 그를 부러워했을 테지만 아마도 그는 그 당시가 가장 외로웠을 것이다. 그토록 의지하며 따랐던 '타키자와 히데아키'라는 든든한 선배가 떠난 자리는 너무나 컸고 그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도 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덜컥 데뷔를 해 버린 것이다. 설상가상 주니어 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냈던 유일한 친구 이쿠타 토마(배우, 쟈니즈 소속)는 <NEWS>의 멤버로 뽑히지 않았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을 나이에 이런 감당하기 힘든 이별 아닌 이별을 겪으며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웃는 얼굴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 이기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책임과 의무를 다 하려고 노력하며 이 과정을 조용하고 성실하게 겪어냈다. 그 어린 나이에,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 속에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아이돌)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결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포기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그가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일에 대하여 확고하고 명확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는 것을 알 수 있다.

꽃미남 애호 칼럼니스트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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